<육길원 주필 / 언론인>
총기공격은 전선 없는 전쟁터
73년 시카고에 처음 이민을 왔을 때, 저녁이면 가끔 전쟁터 처럼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났다. 이런 분위기는 그러지 않아도 낯설고 다른 세상에 직면해, 어리바리한 우리 내외를 공포에 질리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웃의 이민 고참 선배 말이, 한국과 달리 시내에는 총격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밤에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 즈음 워싱턴 대사관의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내 친구는,무엇하러 미국에 왔느냐며,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 이기 때문에 총으로 망할 것이니 두고 보라며, 그래서 자기는 미국에 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요즈음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지금은 이민자를 민족의 자산 이니 개척자니 생각이 많이 진취적으로 변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고국을 등지고 낯선 땅으로 이주하는 것 자체를 패배자나 배반자 쯤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다니던 직장의 상사들이 노골적으로 심했다. 가뜩이나 서러운 판에, 총기의 위협마저 섬뜩하니, 청운의 뜻을 품고 더 넓은 기회의 나라에서 이를 악물고 꿈을 실현 해야겠다는 각오는 비장 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까, 대도시에서는 1년에 어림잡아 수 백명에서 많을 때는 1천 명에 육박하는 어마 어마한 인명이 총기에 의해서 피살되며, 대부분이 흑인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미군이 참전했던 전쟁에서 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평화시 ‘전선 없는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대책 없이 일상화된 잇단 참사
지금은 파산상태이지만 미국 5대 도시의 하나로 자동차 산업때문에 잘 나가던 50-70년대 디트로이트시는 연평균 500명 이상이 총기에 의해 피살되어 미국 1위의 ‘살인도시’로 악명이 났으며, 시카고나 뉴욕, LA 같은 대도시의 살인율도 타국의 기준으로 볼 때는 천문학적인 수치를 기록 할 만큼 높았다. 옛날에는 마약과 갱조직 간의 싸움이거나 강도에 의한 범죄가 태반 이었다.
그런데 21세기 드러와서 세상은 더 나빠졌다. 범죄 장소는 슬럼가 에서 뿐만 아니라 사무실, 식당, 쇼핑몰, 백화점, 교회, 학교,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 장소로 확대 되었다. 가해자도 범죄자 뿐만 아니라 정신병자나 일반인으로 범위가 넓어 졌으며, 인종을 초월해서 흑인, 백인, 히스페닉, 동양인 할것 없이 다양해졌다. 2007년 버지니아 텍서 한국 학생 조승희의 총기난사로 33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였다.
2009년에는 뉴욕주의 베트남계가 이민 서비스센터에서 불특정 다수에 총격을 가해 13 명을 사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그런데 총격사건은‘인종’이 아닌 ‘개인’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조승희 사건을 계기로 경험했다. 동족이 함께 아파 할 수는 있지만, 죄의식 이나 책임을 공유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대사의 미국 사회를 향한 사과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 했다.
이달 들어서만도 벌써 4번의 대형 총기난사 참극이 벌어졌다.
애틀랜터에서 15일 하루에 2건의사건이 몇 시간 차로 일어났다. 서브웨이 매장과 주택가에서 괴한이 쏜 총으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6일 아침 미국의 수도 한복판 해군사령부 건물에서 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무고한 12명이 숨졌다. 또 19일 밤에는 시카고의 한 공원 농구장에서 갱단에 의한 총격사건이 생겨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올해 시카고는 알 카폰의 도시에 ‘걸맞게’ 약 500명 이상이 피살되어, 전통적인 디트로이트나, 90년대 ‘살인도시’인 미니애폴리스, 뉴욕을 제치고 꾸준히 1위 자리를 지켰다.
최근의 잇단 총격사건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또 큰 충격에 빠졌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또 다시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 여론도 규제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반대 보다 높다. 타임 잡지가 올해 특집 보도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가정의 총기 소유 비율은 49%대49%로 미국서 유통되는 3억1천 만기 가운데 전체 가정의 반 만이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한 총기규제에 대해서는 55%가 찬성 하고 44%가 반대를 했다. 400만 회원과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NRA(미국총기협회)의 로비에 대해서는 찬성 48% 반대 42%의 이율배반 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론을 등에 엎고 연방의회는 총기규제법안을 우후죽순 처럼 무더기로 상정했으나, 공화당과 NRA의 반대로 지금까지 유야무야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장애 요인은 헌법과 총기협회
1791년에 만든 미국의 수정헌법 제2조는 “국민의 총기 소유및 사용권은 침해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규정해 놓고 있다. 총기 규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될 때 마다, 총기협회가 금과옥조로 들고 나오는 무기가 바로 이 헌법조항 이다. 미국은 이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자유당 때 어느 한국의 정치가가 말했듯이 “총은 쏘라고 준 것” 이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총기 공격의 규제법 제정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을 만큼 힘든 일 이다.
아리조나 출신 하원의원 게브리얼 기퍼즈가 총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고,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미친 놈이 무차별 공격을 가해 어린 생명과 교직원 26명을 살해 했어도,
분노의 여론은 냄비 끓듯 잠시 뿐, 엄연히 살아았는 헌법과 든든한 자본으로 무장한 총기협회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아메리카의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해마다 미국에서 3만 2천 명이 총기에 의해서 사망을 하는데도, 대법원의 판례는 바뀌지 않고, 400만의 총기협회 장사꾼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들로부터 가장 많은 정치 자금을 받는 ‘선량’들은 선거에 당선 되기 위해 그들과 결탁을 해야 한다. 이 먹이 사슬을 언제 누가 어떻게 끊을 지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의 역사적인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