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의 설교

by 관리자 posted Ja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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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섭 / 장의사>

 

갓난아이가 첫발을 뗴면 부모나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움으로 축하하며 흥분의 여운이 며칠 가듯, 제가 계획에 없는 설교 (?)를 난생 처음 하고 혼자 간직하는 흥분을 여러분과 나누어 봅니다.

 

며칠전 제가 인도한 미국인의 장례 때 일입니다. 데스플레인 (시카고 서북 교외, 제가 일하는 지역)에서 태어나고 장성한 후 일리노이주의 최남단, 강 건너면 캔터키인 조그맣고  평온한 농촌 (Metropolis)에서 사오십 년을 사신 팔십 세 중반의 노인이 농촌 집에서 돌아 가셨습니다. 생활하고 살던 그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고  사백 마일이나 뗠어진 이 동네  데스플레인 공원 묘지에 그분을 안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가족 묘지가 이곳에 있었나 봅니다.

 

하얀 머리의 전형적인 미국인 할아버지였습니다. 살아오신 그 농촌에서 장례 예식을 다 행하였기에 여기에서는 친가족들과 소수의 어릴 적 지인들만이 조문한다고 하여 일정을 간단히 준비하였습니다. 잠시의 조문 시간동안 아들 한 분이 추모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묘지에서는 어떤 예식도 없이 하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 묘지로 출발하기 직전 부인 할머니께서 하관하기 전에 잠시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였습니다. 마음이 허전하셨나 봅니다.

 

하관 예식은 거의 다 신부님이나 목사 종교 지도자가 인도하지요. 교회나 성당이나, 돌아가신 분이 속한 종교 기관이 없으면 장의사가 인도할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요구에 저는 적지 않게 당황이 되었습니다.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늘 보아왔지만 막상 해보려니 여태 한 번도 안해 본 설교를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 난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예식 책을 가지고 가서 읽기로 마음먹고 예식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예식 책에 있는 여러 기도문 중  하나를 읽고 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가면서 책을 훑어 보았지만 그 기도문을 읽기도 힘들고, 어설프게 읽기라도 하면, 한국 표현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도 될까봐, 곧 저는 저의 평소의 생각을 전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묘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이 관 둘레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기다렸습니다. 제가 빈 손이면 허전할 것 같아 갖고 간 예식서를 손에 들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As we all know passing (death) is nothing but a separation of spirit from the body. Mr. Colbourne’s passing means his sprit has left his body and it has returned home. We all are being comforted by the assurance that his spirit is with our Lord Jesus Christ in heaven.


Now we are gathered here to bury his remaining because our body is from earth and goes back to earth. May I say that his spirit is not only in heaven but also it is in each of your heart?  Yes, he has left his sprit in you.  If you think he is dead and gone and do not remember him because you bury him now, he really become dead. But if you carry on his sprit in your life, he will never die. We all know our Lord Jesus Christ lived and died on the cross two thousand years ago, but is he really dead? No, He is not. He is still alive and we believe in it.  We remember Him, we remember what He had taught us and we are trying to live accordingly. What it means is we are carrying on His spirit alive.


It is same to Mr. Colbourne.  What you need to do is remember him and carry on his spirit in your life. And then he never dies. I believe he will continuously look you down from heaven and will appreciate you and will be happy for your remembering of him. You bury him here and returning to your home will not be easy. So I humbly ask our God to comfort you and be with you all!


Shall we close this service by praying with our Lord has thought us?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o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t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 A-men”

 

우리 모두 알듯이 죽음은 육신과 영혼의 분리입니다. 콜본씨의  죽음도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서 본향으로 돌아 가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확신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가 남기고 간 육신을 안장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콜본씨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계실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슴에 있다고 말해도 될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그는 그의 영혼을 여러분의 가슴에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콜본씨께서 돌아가셨고 지금 여기에 묻기에 더이상 기억을 하지 않으신다면 진정으로 죽게 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그의 정신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어 가신다면 그분은 결코 죽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은 이천년전에 오셨다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그는 정말 죽으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그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콜본씨에게도 동일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실 일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여러분을 내려다 보시면서 여러분께 감사하고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사별은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해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같이하며 예식을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멘


기도를 마친 후 한사람씩 장미를 헌화하였습니다. 그동안 부인 할머니께서는 추운 날씨에 떨면서 저를 쳐다보고 제가 하는 말을 듣고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이 동양사람 장의사가 무슨 말을 할려나 궁금해 하셨을까요?

하관 예식은 어려움 없이 잘 마쳤습니다. 저는 유가족과 조객들이 가신 후에 묘지 인부들이 관을 내리고 흙을 다 메울 때까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딸과 한 조객이 저에게 돌아 왔습니다.


“Thank you. It was very well said. (말씀을 잘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저에게 인사하고 갔습니다.


이것이 장의사의 설교였습니다. 사십년 이상을 미국에서 미국 시민으로 살았지만 완전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여 항상 불안한데 짧은 영어 (Broken English)를 가지고 위와 같이 엉겹결에 처음 말씀을 전해 보았습니다. 그것도 한국분들이 아닌 현지인들에게. 장례 양식서를 읽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말씀 증거가 되기를 바라는 저의 마음이였으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하관의 모습이 영상이 돌아가듯 눈에 선 합니다. 그리고 그 때의 흥분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