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상식-장의사의 찬송가 견해

by 관리자 posted Jun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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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사의 찬송가.png

 

 

<이효섭 / 장의사>

 

예배에서 찬송의 중요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신앙을 개인적인 기도로 고백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고백을 곡에 붙여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찬송입니다. 곡 속에 녹아있는 작곡자와 작사자의 고백이 부르는 이의 감정에 즉시 전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은 찬송가와 복음성가로 나눌 수 있겠지요. 찬송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까만 표지의 찬송곡집인데 1949년 합동 찬송가를 발행 후 시절을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한국 기독교인의 찬송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선택된 찬송곡들은 한국의 모든 교파들이 함께 의논하고 선택하여 각 교단 교회에서 찬송가로 부르자고 결정하여 예배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모든 곡들이 대부분 작곡자와 작사가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가사가 쓰여진 배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150년 정도 교회에서 찬송가로 불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복음성가의 물결이 일어 났습니다. 지금은 CCM      이라고 하지요. 7080 통기타와 더불어 복음성가는 한국교회에 새 시대를 엽니다.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의 약자인데 근대 기독교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복음성가는 CCM의 시작이며 CCM은 말대로 근대 기독교 음악의 대명사이지요.


하여간 요즈음 이민 교회에서도 전환기의 진통을 겪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초기 이민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교회들은 지금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은 평생 불러오고 익히 아는 찬송가의 곡들인데 교회마다 복음성가의 도입이 없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지는 양 CCM곡 들을 부릅니다. 사실 이 CCM곡들이 전 교인들이 알고 함께 부른다면 좋겠지요. 찬양 인도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제가 몇 교회를 둘러보면 각 교회에서 불러지는 CCM은 다 다르기도 합니다. 지금 CCM의 홍수 속에 검정할 시간이 모자랍니다.


21세기 찬송가라고 불려지는 최신 제작된 찬송가에는 이전에 불려지지 않은 많은 찬송가는 빠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 20-30년 동안 애창한 복음송은 찬송가에 실록 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살아 남는 곡과 없어지는 곡이 있습니다.


우리가 작사나 작곡을 할 때 감정이 글과 곡을 쓸 수가 있고 아니면 영혼이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여태껏 불러온 찬송가에는 우리가 피조물임을 절감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인생의 저 밑 바닥에서 죽음을 겪고, 죽음을 바라보고 우리의 인생이 무엇인지, 우리의 영혼이 무엇인지를 고백하는 시를 음에 붙여 불러 왔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고백하는 것에 음을 붙여 부르는 것 입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 찬송을 하려는데 새로운 곡을 도입하려면 이전 곡이 밀려나기 마련이겠지요. 감정으로 만들어 진 곡들은 사람의 감정을 흥분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혼으로 만들어진 곡들은 듣고 부르는 이들의 영혼과 교통합니다.

사람이 한 생을 마칠 때 육신은 쇠약하여 누워만 계십니다.  그리고 눈을 뜰 힘도 없어집니다. 감정의 날 뜀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젊어 한참 활동할 때, 교회에서 찬송을 힘차게 부를 때와 같이 깨어 있습니다. 영혼이 본향으로 갈 준비를 하고 계시지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다만 하나님의 결정만을 기다릴 때- 속에 있을 때 가장 큰 위로는 찬송가 입니다. 그때는 가족들도 진정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처럼 의미가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작곡자, 작사가의 영혼이, 부르는 분의 영혼이, 누워 계신 분의 영혼이 함께 하시기에 누워 계신 분은 편안해 하십니다. 비록 몸의 기능이 정지되어 가지만 감은 눈 사이로 영혼의 눈물은 흘리십니다.


빠른 박자와 높은 음들, 음악적인 기교로 만들어 진 CCM이 여기서 불려 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