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김광정 교수의 시카고 역사이야기(10)

by 관리자 posted Jul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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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와 남북전쟁 (2)

                                유니언스탁야드(Union Stockyard)>

                                                      

    지난 번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해 시카고 경제가 얼마나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를 전반적으로 보았는 데,  오늘은,  남북전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설립된 후 거의 백(100)년간 시카고의 명소이었던  유니언스탁야드 (Union Stockyard)를 살펴보아, 남북전쟁 (1861. 4.10--1865.4.9)이 시카고에게 덩굴채 굴러 온 호박  되었던 실지 사례를 보도록 하겠다.   ‘교역의 교차로를 목표로 시작된 시카고를 중서부 최대교역센터로 만든 일등공신은 곡물(grain)과 가축 (livestock)거래이다시카고에서의 가축거래는 가축 자체를 사고 파는 것보다는, 가축을 도살하여 분배하는 meatpacking을 지칭한다그러니까, 시카고의 스탁야드가축도살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하다.  그러나,  ‘유니언스탁야드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가축도살 기술최대 이윤추구의 비지네스 개념을 기막히게 잘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의 큰 규모로, 아주 효율적으로 하였던 것이다.

 

     여하간에, 시카고 최초의 가축도살장은 언제, 누가, 왜 세웠을 가기록에 의하면, 시카고 최초의 도살장은 디어본성채 (Fort Dearborn) 주둔 병력의 육류 공급을 위해 시카고 초기 정착자의 하나였던 후바드 (Gurdon Hubbard)가 세웠다디어본성채는, 미시간호수/시카고강의 미시간 에베뉴와 웨커드라이브의 교차 지역에, 1803 - 1812, 그리고 1816 - 1839년까지 소재하였는데,  Hubbard stockyard가 언제 세워졌는지, 어떤 규모였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그러다가, 1848 Bull’s Head Stockyard를 시작으로 여러 군데의  도살장이  세워져 급증하는 시카고주민의 육류 공급을 담당하였다그러나, 1850년 대 말까지, 시카고의 모든 스탁야드들은 소규모 pork보존에 그쳐, 굳이 “meat industry”라고 부를 만한  산업은 전무하였었는 데, 남북전쟁이 시작되어 북군의 고기공급을 시카고가 맡게 되면서 ‘meat industry’  생겨났던 것이다실제 전쟁은 주로 남동부에서 치뤄져서 시카고와는 거리가 먼데, 왜 시카고에게 북군의 육류공급을 맡겼슬 가?  그것은 물론 1850년대에 완전히 자리잡은 철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남북전쟁 내 내, 가축들은 기차로 시카고로 실려와서, 도살되고, 손질된 육류가 되어 기차로 실려 나갔던 것이다.

 

   급증한 육류수요의 규모는? 1859-1862년 사이에  meat거래량이 600 % 늘어났고, 1862년이 되면 시카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돼지고기를 생산한 “ Porkopolis “의 명성을 얻는다. 또한, 1863년 한 해에 시카고에서 도살된 돼지를 가슴을 맞대어 한 줄로 쭉 세워놓으면 뉴욕시에 닿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게 육류 수요가  급증하는데, 스탁야드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으니, 가축을 옮겨오는 것이나 육류 공급이나 아주 많은 불편을 겪었는데, 그 타개책 강구를 위해 시카고돈육업자협회 (Chicago Pork Packers’ Association)9개의  철도회사 공동주관으로1864년 컨프런스가 열리게 된다. 이 컨프런스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주어진 미국 육류산업 주도권을 시카고가 계속 유지하려면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스탁야드들을 한 곳으로 통합하여 economies of scale을 통한 효율성 증가가 필요하다 이었다.   

 

    유니언스탁야드는 다운타운에서 4마일 떨어진 시카고강 남부지류 서쪽320에이커의 대지 - 할스테드 서쪽, 39가와 47- 1865년 크리스마스에 문을 열었다유니언스탁야드 안에는 신속한 가축/육류 운송을 위해 자체 철도라인이 설치되었고,  assembly-line 방식으로 가축도살과 분류를 하였으며, 2천개가 넘는 임시외양간 (pen),  10마일의 사료공급과 3마일 물공급 튜브가  마련되었다일단 가동이 시작되면 속도가 붙기 마련인지, 1868년이 되면, 유니언스탁야드는 21,000마리의 소, 75,000마리의 돼지와 22,000마리의 양을 동시에 수용/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하루에 사용된 사료가 100톤에 달하였다고 한다가히 천문학적인 규모이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가축처리 시설 뿐만 아니라, 처리된 육류를 전국적으로 분배하는 사무실의  규모도 엄청났고, 비지네스맨들과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스탁야드 안에  Swift회사가 260개 방을 갖춘 호화호텔을 마련하여 시카고의 최대관광명소로 자리를 잡게 된다. 1893년 컬럼비안 박람회 방문자들에게 유니언스탁야드는 반드시 들려야 할 코스가 되었고, 독일의 재상, 비스마크가 시카고의 유니언스탁야드를 보기 위해 미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큰 규모의 도살장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30마일의 하수구를 통해 시카고강에 그대로 버려, 시카고강남부지류의 오염이 극심하였고, 북동풍이 부는 날에는 시카고강에서 나는 악취를 다운타운에서도 감지하였다고 한다또한, 유니언스탁야드 주변에는 여러 이민그룹들의 주거지가 자리잡었고, 시카고의 대표적 슬럼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유니언스탁야드에서 대량으로 밀려오는 육류를 당할 수 없었던 미동부의 meatpacker들이 시카고 고기에 대한 부정적 캠페인을 여러번 펼첬는데이의 대응책으로1870년대에 Swift회사가 냉동철도를 시작하였고, 1890년대 Upton Sinclair가 발표한 유니언스탁야드에서 일하는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The Jungle (정글)이라는 소설은 아직도 미 고등학교 교재로 쓰이고 있다. 1971.12.20.문을 닫은 유니언스탁야드에서 이은택목사(최초의 한인교회인 제일감리교회)등 한인들도 일을 한 기록이 있다. 지금은  41가에 작은 규모의 유니언스탁야드의 기념 파크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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