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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_1890chicago.jpg

1890년 시카고 다운타운의 교통 체증

 

26_TunnelMail.jpg

물품 운송 터넬

 

26_Before & After CSSC.gif

 

 

시카고의 공공위생 운하의 건설로 시카고 강의 역류를 이루어 냈다

 

26_Lockport Lock CSSC.jpg

시카고의 공공위생 운하, Lockport Lock

 

 

<김 신 교수>

 

20세기가 시작하는 1900년 시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은 어떠했을까? 미국의 제2대도시 (The Second City)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인구도 계속 급증하고 있고, 지리적 경계도 넓어졌고 노사문제로 시끌시끌해도 산업화의 열기로 경제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도시, 시카고는 이상적인 삶의 터전이었을까? 아니었다. 왜일까? 인구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면, 급증한 인구가 원활히 생활할 수 있는 도시의 제반 시설 (infrastructure)은 따라가지 못하고 멀리 뒤쳐지게 마련이니까. 더구나, 이렇게 빠른 인구 증가는 미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어서, 시카고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본보기가 없었으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을 터. 오늘은, 필요한 제반 시설 중 상하수도 문제와 다운타운의 교통 체증을 살펴본다.

 

먼저, 다운타운의 극심한 교통체증 (traffic jam)을 살펴보자. 급증하는 인구의 대처법은 우선 도시의 지역적 경계를 넓히는 것이다. 시카고는 주민 투표를 거쳐1889년에 하이드 팍 (Hyde Park), 레익 뷰 (Lake View), 제퍼슨 (Jefferson)과 레익 타운십 (Lake Township), 1899년에 오스틴 (Austin)을 합병하며 (annexation) 1956년에 오헤어 공항 합병을 제외하면 현재의 시카고 모습을 갖춘다. 이때 합병을 거부한 타운은 에반스톤 (Evanston), 시세로 (Cicero)와 옥팤 (Oak Park)이었다.  여하튼, 시카고는 새로이 합병한 지역에 대중 교통 수단인 전차를 대대적으로 설치하고 운영하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전차 노선이 다운타운을 돌아 나오게 계획했다. 다운타운 비지니스 부흥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달리 말하면, 아무리 지역적으로 확장되어도 시카고의 정치와 경제 파워의 중심은 다운타운, 그것도 전차 노선이 돌아 나오는 Loop주위라는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시카고에서는 모든 것은 Loop으로!” 가 된 것이었다. 

 

당연히, 1880년대 말부터 다운타운은 엄청나게 늘어난 교통량으로 심각한 교통체증 (traffic jam)이 일상화된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인구와 비즈니스 물량이 너무 빨리, 너무 크게 늘어나 어쩔 수 없이 미 전역에 악명 (?)을 드높이게 된 시카고 다운타운의 교통 체증은 모든 이들에게 손해를 입히는데, 특히 물품을 제 때에 배달 받아 판매해야 하는 사업체들의 경제적 손실이 엄청났다. 사람보다 비즈니스가 우선인 시카고는 다운타운 지하 42피트에 물품운송 터넬 (tunnel)을 만든다. 1899년에 전화 케이블을 위한 갱도로 허락받았는데, 시카고시가 맨홀을 만드는 것을 불허하자 술집 지하실에서 밤중에 몰래 파기 시작했다는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1903년에 지상에서의 물품 운송난 해결책으로 물품과 메일(mail) 운송 터넬로 허가 변경이 되어 본격적인 갱도 공사가 시작된다. 1914년이 되면, 평균 높이7피트, 넓이 6피트, 길이 60마일의 터넬이 다운타운 이곳 저곳의 사업체와 다운타운 외곽 4곳에 설치된 depot를 연결하게 된다.  이 터넬을 통해 하루에 5,000개의 트럭이 배달할 수 있는 물품이 운송되었고, 물품이나 메일 뿐만 아니라, 다운타운의 건축 잔해 (debris)들도 도시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과연 시카고!” 싶은 것이, 항상 화씨55도를 유지하는 지하 터넬의 공기를 지상의 건물들에게 여름에는 냉방용으로, 겨울에는 난방용으로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1992 4월에 다운타운을 한동안 마비시켰던 시카고 홍수 (Chicago Flood)의 근원지가 바로 이 터넬이다.

 

두 번째로, 상하수도 문제를 살피자. 잘 알다시피, 시카고는 미시간 호수 남서단의 시카고강의 남북 지류를 중심으로 주거지와 산업이 발전한 도시이다. 당연히, 초창기부터 식수 ()는 미시간 호수에서 끌어왔고, 온갖 배설물과 오물은 시카고 강에 버렸다. “정말로?” 할지 모르나, (river)에 배설물을 버리는 것은 그 당시 미국 어느 도시에서나 있었던 흔한 일이었다. 그나마 시카고에서는 1854년의 여름 몇 달 사이에 인구 6%가 사망한 콜레라 역병을 계기로 1855년에 미국 최초로 조직적인 상하수도 (sewage) 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였다. 여하간에, 시카고가 당면한 문제는 시카고 강이 미시간호수로 흘러 들어가기에 오염된 식수를 먹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찌할까?

 

처음에는 오염되지 않은 물을 찾아 미시간 호수의 안쪽으로 점점 더 멀리 파이프를 연장하다가, 1860년대에 ‘The Crib’이라 불린 지름50피트,높이 70피트의 8각형 건물을 미시간호수 2마일 안쪽의  40피트 물 속에 내려놓고 그 내부에 벽돌을 쌓아 19피트를 더 물 속으로 가라앉혀 해저에 안착시켜 미시간 호수 해저의 물을10피트의 파이프로 시내로 끌어 들였다. 엔지니어링의 쾌거로 불린 이 건축물 (Crib)은 지금도 소기의 역할을 거뜬히 담당하고 있다.  레익쇼 드라이브, 시카고 애배뉴에서 미시간호수 한 가운데 보이는 깃발이 달려있는 팔각형 건물이 이 Crib의 수면 위10피트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시간 호수 안으로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가 물을 끌어와도 인구와 함께 급증하는 오물의 양으로 인해 미시간 호수 오염의 근본 원인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임시 방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시간 호수 오염의 근본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카고 강의 흐름 방향이었다. 시카고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미시시피 강과 멕시코 만에 이르는 데스플레인 강과 일리노이 강과는 달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미시간 호수로 연결되고, 결국은 대서양으로 유입된다.  한 마디로, 시카고 강을 역류시키지 않으면 미시간 호수 오염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카고에서는 일찍부터 시카고 강을 역류시키는 공사를 여러 번 시도하였는데, 매번 얼마간 성공하는 듯하다가 큰 장마라도 오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다. 영구적으로 시카고강을 역류시킬 수는 없을까?

 

드디어, 1889년에 일리노이 주정부는 Chicago Sanitary and Ship Canal (CSSC공공위생 운하), 일명 시카고 배수 운하 (Chicago Drainage Canal) 의 건설을 추진한다.  지금도 엔지니어링의 7대 쾌거  (wonders)의 하나로 여겨지는 28마일의 이 운하의 기본 아이디어는 시카고 강의 미시간 호수 입구를 막아 시카고 강을 미시간 호수가 아닌, 데스플레인 강과 일리노이 강의 (1848년 개통한)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운하로 인해 시카고 강의 물살이 빨라지고, 시카고 강이 영구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류하게 되면서 시카고의 배설물들은 이 운하를 통해 일리노이-미시간 운하로, 그리고 미시시피 강으로 유입된다. 물론, 배설물은 순화 처리를 거친 후에 방류하였다. 이로써 미시간 호수의 오염은 서서히 낮아졌다.

 

소요 공사기간 8, 85백명의 인력과 (후에 파나마 운하의 건설에 사용된) 최신 건설장비가 동원되어 190012일에 완공한다. 완공은 1900 1 2일이었으나, 실질적인 배수는 1 17일에야 시작되었다.  한 시가 급한데 배수가 두 주일이나 지연된 것은, “시카고의 온갖 배설물을 우리에게 보낸다고?  Oh, No!” 하며 소송을 제기한 데스플레인 강 하류와 일리노이-미시간운하 주위의 몇 타운들과 센트루이스 때문이었다. 1922년까지 확장과 보충을 거듭한 이 운하는 현재도 풀가동을 하고 있는 데, 최근에는 시카고의 배설물 처리가 충분치 못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 공공위생 운하로 인해 시카고의 공중위생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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