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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1980년에 시카고에 유입된 이민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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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상자를 싣는 이탈리안들, 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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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의 막스웰 스트리트 마켓 (쥬타운)

 

 

<김 신 교수>

 

오늘은,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도 즈음의 시카고 주민 분포를 이민 그룹의 렌즈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우선, 복습부터 해보기로 한다: 3,820명의 인구로 1837년에 시(city)로 출범한 시카고는, 1848년에 모던 시카고로 발전했고, 1871년에는 주민 300,000 (1870년 센서스 기록에 의하면298,977)이  참혹한 시카고 대화재를 겪어 초토화 되었다. 그러나, 1871년의 대화재는 오히려 시카고에 전화위복이 되어, 1880년에는 인구 500,000, 1890년에는 드디어 인구 백만 (정확히 1,099,850)의 미국의  제2대 도시가 되었다. 1900년의 센서스에서 백 칠십만 (1,698,575), 1910 년에 22십만 (2,185,283),  1920년에는 27십만 (2,701,705)명의 인구를 기록했다.   

 

잘 아는 대로, 미국은 동부 연안의 영국 식민지 13개 주가 대륙의회를 만들어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아주 혹독하고 아슬아슬한 독립전쟁을 수 년간 치룬 후에야 세워진 나라이다. 1790년 센서스의 미국 인구 39십만 명의 절대 다수는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 러시아 등등으로부터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아 건너온 이민자와 이민자의 자손이었기에 미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이민의 나라이다.  이렇게 이민이 통상화 되어있던 미국에도 대략359십만 명의 이민이 유입된1820-1920년을 이민의 세기라고 부른다. 흥미롭게, “이민의 세기전반부(1820-1880)의 이민이 129십만 (35%)이고 후반부 (1880-1920)의 이민이 23백만 (65%)이다. 숫자만 다른 것이 아니고 특성이나 미 정착형태가 엄청 다르다. 그래서, 전반부의 이민을 Old Immigration, 후반부의 이민은 New Immigration으로 구별한다.

 

Old Immigration (1880년 이전 이민)

35%

New Immigration (1880년 이후 이민) 65%
북, 서 유럽 출신

남, 동유럽 출신

(폴리시, 이탈리안, 러시안 유대인, 보헤미안 등)

영어 사용, 기술 보유 영어와 미국 체제를 잘 모른다
아이리시를 제외하면 개신교 주로 카톨릭
아이리시 외에는 도시생활에 익숙 가난하고 교육, 기술이 없다

 

이미 살핀 대로, 시카고 인구는 1880년 이후에 급팽창을 하였다. 어떻게? “이민의 세기후반부1880-1920년에 미국 전체 이민의 23백만 중 25십만 내지는 3백만명 (11-13%)이 시카고에 정착하였다고 하니, 시카고 인구의 급 팽창은 새로운 이민 (New Immigration)의 대대적인 유입으로 가능해진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1900년에 시카고에는 아이리시(Irish), 독일인(Germans), 폴리시(Poles), 스위디시(Swedish), 체코(Czech), 놀웨지언 (Norwegian), 크로아티안(Croatian), 슬로바키안(Slovaks), 이탈리안 (주로 시실리언), 리투아니안 (Lithuanians), 그릭 (Greek), 유대인 (Jewish) 등이 미국 어느 도시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카고는 세계 최대의 Lithuanian, 두번째 큰 Czech, 세번째 큰 Irish, Swedish, Polish, Jewish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이민들을 보는 소위 Anglo-Americans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미국인 뿐 아니라, 같은 나라에서 온 Old-immigrants들이 자신의 모국에서 온 새로운 이민을 대하는 태도도 그룹마다 온도 차이가 엄청나다. 예를 들어, 이탈리안들은 새로 오는 이민을 아예 내쳤지만, 유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다. 어느 새로운 이민 그룹이나 정부의 도움은 거의 없었고, 단지 교회와 동족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정착하였다자연히, 새로운 이민자들이 시카고에 정착하는 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릭(Greek)이나 유대인 (Jewish)을 제외하면,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장소로 술집(saloon) 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민자들의 언어로 도움을 제공하는 정부 기관이 없던 시기여서 영어와 미국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들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장소는 동족이 운영하는 술집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족 하나: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 극렬했던 반이민(Anti-Immigrant) 2KKK 운동이 이민자=술주정뱅이”, 따라서 미국 사회를 좀먹는 그룹으로 간주하였고, 이러한 반이민 사조가 1920년의 금주헌법을 가능케 했다.)

 

여하간, 20세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시카고의 몇 이민자 그룹을 좀 더 자세히, 그러나 간단히 살펴 보겠다

 

1)    폴리시

이들 폴리시 이민인들의 특징은 똘똘 뭉치는Group Solidarity. 1890년에 40,000명이던 시카고의 폴리시 인구는 1910- 210,000, 1930년에 401,000명으로 늘어 났다. 주로 공장과 Stockyards지역에 5개의 소위 Polish colony (ghetto)에 모여 살았지만, 폴리시가 절대 다수인 주거 지역은 없었다. 이때의 폴리시들은 어느 지역에 살든지 흔히 말하는 순전한 폴리시 커뮤니티 (institutional completeness, , 미국에 오래 살아도 모든 생활을 미국 기관보다는 폴리시 기관을 통해 하는 것)를 이루며 살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대 다수가 카톨릭 교회 멤버 (1910년에 210,000명 중140,000명이 카톨릭) 이어서, 학교와 비즈니스 등 모든 생활이 카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시카고의 카톨릭은 아이리시가 꽉 잡고 있었기에, 교구와의 갈등이 많았다. 또한 자기들끼리 모여 살았기에 동화가 늦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2)    이탈리안

이탈리인 이민인들의 특징은 철새 이민 (Temporary Immigration)이었다는 것이다. 1890년에  5,700, 1900년에16,000, 191045,000, 1920년에는 59,000명의 이탈리안 이민 인구로 기록되어 있다. 이 당시의 이탈리안 이민은 대부분이 남부와 중부 이태리, 특히 시실리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I’m not an Italian, but a Sicilian.”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대부분 농촌 출신이다. 이들의 특성은, 첫째, 대다수가 젊은 남성으로 미국에서 돈 벌어 고향에 돌아가는철새 (temporary) 이민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일을 하면서  기술이나 영어를 배울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둘째, 이들은 이탈리안 중개인 (padrone)을 통해서 일자리를 구했다.  셋째, 이들은 남부 이탈리아의 한 마을의 젊은이 전체가 한꺼번에 이민 오는 campanilismo 이민이었다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이들은 소위 이탈리안 슬럼에 모여 살았다. 당시 이탈리안 슬럼으로 가장 큰 곳은 the Near West Side에 있는 Taylor St. Hull-House근처, 그리고 가장 유명하였던 곳은 Near North Side Little Italy, 또는 W. Division St. RiverLittle Hell 지역 등 주로 교통이 아주 외진 곳에 모여 살았다이들도 대다수가 카톨릭이었지만, 시실리 정복 전쟁에서 북부 이탈리의 앞잡이였던 로마 카톨릭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감이 아주 깊었다. 이들은 192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카톨릭에 조금 열심을 내었다.

 

3)    동유럽에서 온 유대인

이들의 특징은 더 높은 계층으로 진입하기 (upward mobility) 위해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초기에 시카고에 온 독일계 유대인들은 이 새로운 동유럽 유대인들이 도착하였을 때 이미 시카고 사회의 중, 상류층에 흡수되어 있었기 때문에 1880년까지 시카고에 유대인 지역은 없었다. 1880년에 시카고에서  독일계 유대인이 10,000명 정도 있었는데, 1900년에 70,000명의 새로운 이민이 더해지면서, 1930년에   시카고의 유대인 인구는 275,000명이다. 미국의 뉴욕시, 그리고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바 (Warsaw, Poland) 다음으로 유대인이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유대인 이민의 약 80% 가 동유럽,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부지역에서 온 유대인이었다시카고에서 이들은 Canal St, Damen Ave., Polk St., 16 St. 등 예전에 독일, 체코, 아이리시가 살았던 집값이 싸고, 좀 위험하기도 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유대인 지역을 형성하였다. 특히 Maxwell Halsted St.의 쥬타운 (Jewtown- Maxwell St. Market)은 이들 유대인들이 행상에서 노점상이 되고, 다시 상점 소매상으로, 다시 도매상이 되어 좀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어느 이민그룹보다 이 유대인들은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미국에서 영구히 살기 위해 이민 온 그룹이었다이들과 독일계 유대인들의 종교적 차이도 흥미롭다.

 

4)    그리스 이민

그리스인 이민인들의 특징은 소규모 자영업 성공 (Entrepreneurial success)이었다는 것이다. 1880년에는 몇 백명에 불과했던 그리스인 (Greek)들의 이민이 1910년이 되면 15,000명이 된다. 물론 다른 그룹보다는 적지만, 시카고의 그리스 커뮤니티가 미국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크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그릭 박물관이 시카고에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시카고의 Greek Town 이나, the Delta – Halsted, Harrison, Blue Island, 그리고 Polk St. 지역에 모여 살면서, 똘똘 뭉친 (tightly knit)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았다. 이들의 특징은 자영업 --1919년의 18,000명 그리스인들 중에 10,000명이 자영업계 종사자였다고 한다.-- 특히, 청과상을 많이 하여서 이탈리안이 장악하고 있던 시카고의 채소와 과일 비지니스를 소매 뿐 아니라 도매까지도 빼앗았다. 당연히, 이탈리안 커뮤니티와 그리스 커뮤니티의 갈등과 분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5)    체코 이민 (Czech)

보헤미안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특징은 부동산 건물주 (property ownership)가 되는 것이었다.  1870년에 10,000, 1895년에 60,000, 1910년에 110,000명의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Pilsen, 16- 22, Halsted Western사이의 지역에 보헤미안enclave를 만들어 살았다. 1910년에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다음으로 체코인이 많은 도시가 시카고였다고 한다이 당시의 다른 어느 그룹보다 교육도 더 높고, 덜 가난하였고, 영구 정착을 목적으로 이민 왔다. 이 그룹의 특징은 열심히 저축하고 같은 동족만의 조직을 만들어 빌딩과 상가, 주택 등을 매입해서 소유했다는 것이다이리하여, 이들은 Pilsen을 벗어나 캘리포니아 가에 Czech California (현재의 South Lawndale지역)를 형성하였다

 

6)    스웨덴 이민 

스웨덴 이민인들의 특징은 다른 그룹보다 빠른 동화 (assimilation), , 모델 마이노리티 (model minority)였다는 것이다. 1870년 이전에는 놀웨이, 덴마크와 같이 스칸디나비안 으로 분류되었던 스웨덴 이민이 1870년이 지나면서 놀웨이, 덴마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늘어났다. 시카고의 스위디시 인구가 1880년에 20,000, 1890년에 43,000, 1920년에 121,000명으로 증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적은 수였지만, 1880년 이전에 형성된 시카고 스위디시 커뮤니티에 대해 지역민들의 좋은 평판이 있었고 커뮤니티가 조금씩 퍼져 나가는 와중에 이민이 급증하였기에 새로 오는 스위디시도 다운타운의 슬럼지역을 거치지 않고 그런대로 안정된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시카고의 스위디시 지역은, Swede Town- Near North Side- Division-Superior-Franklin- Larabee St., Andersonville- Clark & Foster 지역 등이다.

 

대규모의 새로운 이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었지만, 20세기가 시작할 때 시카고의 경제, 정치, 언론 모든 면에서 주류(the Haves)Americans이었고, 비주류(the Have-Nots)는 이민자였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반이민 사조(Nativism)가 시카고 사회를 지배하였다. 지금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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