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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의 State St.의 상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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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설 2단계에 세워진 건출물

 

 

 

시카고역사 이야기<14> 재건설에 올인하는 시카고:  2단계 1880-1893 (1)

< 교수>

 

이미 언급한대로, 1871 대화재 후의 시카고 재건설에는 7년의 공백기를 가운데 두고 특성이 아주 다른 2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1871-1873(시카고역사 #13참조). 그리고, 7년의 정체기가 있은 후 1880년에 시작된 두 번째 단계이다. 오늘부터 시카고를 미국의 제2도시 (The Second City)로 만든 재건설 두 번째 단계를 살펴보겠는데, 우선, 첫 번째 단계를 좀 더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화재 진화 바로 그 다음 날인18711011일부터 시작된 첫 번째 단계의 재건설로 시카고 경제와 인구는 1872년부터 초특급성장을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의 빠른 회복을 넘어 더욱 아름답고 웅장한, 더욱 (화재에서) 안전한 시카고의 건설을 이룬 것 일테다.  이리 되기까지 불타버린 State St. 상가 재건에 올인하여 시카고의 대외 이미지를 쇄신시킨Potter Palmer, Marshall Field, George Pullman–"New money”라고 불렸던-- 시카고의 2세대 기름종이들의 활약이 컸다. 그때까지 살아 있었던 초대 시장 옥덴 (William Ogden) 같은1세대 리더들은 주로 일리노이와 연방 정부, 그리고 동부 재력가들의 후원을 끌어 드리는 막후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시에, 대화재에서 --시카고 강 서쪽에 위치하였던 관계로-- 피해가 별로 없었던 시카고 산업의 기반 -- 유니언 스탁야드 (Union Stockyard,) 철도 회사들 (불탄 시내의 passenger depot는 곧 재건, 화물용 철도는 피해가 없었다), 곡물 엘레베이터 (grain elevator), 목재 선창 (lumber wharf)--이 풀 재가동하며 시카고는 필라델피아 서쪽의 제1의 산업 도시로의 부상을 시작한다.   

 

여기에 더하여, 1872년에는 몽고메리 워드 (Montgomery Ward)mail-order catalogue사업이 시작되어, 시카고가 미국의 카탈로그 유통 사업의 메카가 된다. 흔히들 미국 카탈로그 사업이라고 하면 시어즈 (Sears Roebuck)를 연상하지만, 몽고메리워드가 원조이다.  1865년에 시카고에 도착한 33세의 Montgomery Ward Field & Palmer 백화점과 세인트루이스의 한 상점의 세일즈맨으로 중서부 농촌 지역을 두루 다니다가 얻은 아이디어 아이템으로 mail-order catalogue사업을 창업하였다. 1871년 말에 시작할 예정으로 물품들을 모아 놓았는데,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말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2,400을 끌어 모아 물품을 다시 사들이고 1872년 가을에 163개의 상품을 선전하는8x12인치 한 장의 카탈로그를 40명의 농부들에게 뿌리며 승부를 거는 도박(?)을 하는데, 도시 언론의 비방 선전도 잠깐, 이 비지니스는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872년에 한 장으로 시작한 카탈로그가 1874년에는 8, 1875년에는 72, 1880년대 말이면 540 장에 24,000개 품목을 실을 정도로 커지고1900년에는 1,200페이지의 카탈로그와 현대식 세일즈 전략, 많은 고용 인력과 다운타운의 warehouse등 대사업체를 이룬다. 이를 지켜본 Richard Sears Alvah Roebuck 1893년에 이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몽고메리워드는 카탈로그를 통해 농촌 (rural) 지역 주민들과 도시 (urban) 지역 주민들의 생활방식 차이를 없앴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았고, 1930년대까지 지속된 끈질긴 법정 소송으로 다운타운의 그랜트팍 (Grant Park)을 퍼불릭팍 (Public park)으로 지켜냈다.  

 

이리 활발하던 재건설이 왜 1873년 말부터 1880년 초까지 올스톱 된 것일까? 혹 시카고 로칼 정치인들과 경제 리더들의 헛발질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재건설 열차가 덜컹거리다가 완전 정지한 이유는 1873년의  금융 패닉 (Panic of 1837, “The Panic”)으로 야기된 최소 7년간의 경제 불황이다.  1930년 초까지 경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으로 불릴 정도로 큰 경제 불황을 야기한 ‘1873 패닉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되어 미국에서는 1873104일 뉴욕 시의 한 은행에 예금주들이 몰려든 bank run으로 표출된 금융 위기로 시작되었다.

 

*사족으로: 믿기 힘들지만, 그 당시 미국에는 연방 정부의 금융정책을 전담할 국책 은행이 없었다. 지금의 연방준비은행 (Federal Reserve System-연준)1893Bank of United States이름의 한 민간 은행의 예금 지불 불가 위기에서 시작된 호된 경제 불황을 치룬 후 1913년에야 드디어 조직되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짧아지는 주기와 깊어지는 골의 경제 사이클로 홍역을 수시로 앓았다. 국책 은행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대부분의 그 당시 미국인들은 Bank of United States는 당연히 연방정부 은행이라 믿었다는 카더라통신이 있을 정도.

 

1873년 말부터 7년간 재건설은 정지했지만 그렇다고 시카고가 조용했을까? 그럴리는 없겠지? 유입되는 인구는 줄었지만, 시카고를 떠나는 인구는 별로 없으니 노동 인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었고, 일자리 창출은 제자리 걸음이고 임금 동결과 삭감이 늘어나니 노동 분규로 다운타운은 항상 시끌시끌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노사 분규의 진원지이고 남북전쟁 이전에 미 철도의 The hub이 된 시카고, 1877년 웨스트 버지니아(Martinsburg, West Virginia)에서 미 전역의 철도 노동자 대파업 (The Great Railroad Strike)이 시작되자, 대파업에 조인하여 아주 격렬한 소요를 참 많이도 벌였다.

 

그러다가, 1880년부터 재건설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주춤주춤 시작하더니 곧 이어 가속도가 붙은 이 두 번째 단계 재건설은 시카고 역사에 획기적인 신기원을 이룬 시대로 구분될 정도로 정말 뜨겁게 시카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확장시켰다.  이 시기의 재건설은, 첫째,  새로운 건축 기술과 자재를 이용해 미국 최초의 고층 건물skyscraper (William Le Baron Jenney’s Home Insurance Building- 1885)을 다운타운에 세웠고, 연속으로 세워진 여러 고층 건물로 시카고는 skyscraper의 대명사, 그리고 현재까지도 건축의 메카로 불리게 되었고, 둘째, 대중교통 수단의 혁신으로 시카고 상권과 시의 지리적 경계를 넓게 확장시켰으며, 셋쨰, 드디어1890년 백만명이 넘는 인구를 갖춘 미국 제2의 도시, 시카고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때의 시카고 재건설은 시카고를 더 높게 (), 더 넓게 () 만들며 시카고 전성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카고 경치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두 번째 재건설은 물론 (첫 번째 단계 재건설을 주동한) ‘New-money’ 들과 산업가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시작되었지만, 동시에,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건축가들의 대담한 건축방식의 혁신 --: steel-frame, floating foundation; Louis Sullivan & Chicago school; Daniel Burnham & Manadnock buildings --과 여러 가지의 발명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미국에서 19세기 후반은 발명의 황금시대이다. 예를 들면: (1) 전기-전구, (2)전화, (3) 타이프라이터, (4) 전차, (5) 만년필, (6) 코닥 카메라, (7) 전축, (8) 지퍼, 등등. 두 번째 단계의 시카고 재건설은 이러한 새로운 발명들이 대대적으로 상업화되는 계기였다. 

 

이 두 번째 재건설 시기에 시카고에서 시작된 건축가와 자금주의 관계가 건축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도 있다. 그때까지 건축가는 그저 부자들이 내어논 자금에 맞춰 그들의 요구대로 건물을 설계하고 지었는데, 이 시기에 시카고에서는 건축가들의 건축 방식 혁신을 믿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선뜻 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시카고는 세계 유수의 건축가들이 모여들고, 첨단의 건축물이 잇달아 건축되었다. 이리하여, 시카고는 전 세계 건축가들이라면 꼭 와야 하는 건축의 메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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