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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_Grain elevators- Chicago River.jpg

시카고 강가에 세워진 곡물 엘리베이터

 

7-1_CBOT_resized.jpg

1848년 CBT의 Grain Receipt

 

7-3_McCormick reaper.jpg

맥코믹의 소맥 추수기

 

 

 

< 교수>

 

지난 번 칼럼 <시카고역사 이야기 #6>에서 우리는 1848410일 완공, 개통된 일리노이-미시간 운하 (I-M Canal)18481120일 시작된 철도 서비스, 그리고, 시카고 주변에 Turnpike라 불린 나무로 된 하이웨이 (Plank Road)의 건설로 인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영토를 확정하고, 서부 개척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던 당시 시카고가 미국의 최대 교역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시작한 사실을 살펴 보았다. 경제적으로도, 이리 운하와 오대호를 통해 6(six days)이면 연결되던 뉴욕시와 시카고의 교역이 I-M운하와 미시시피강을 통해 뉴올리언스까지 확장되어 미국 동부와 유럽의 공산품과 미시시피강 유역과 중서부의 농산품 교역 마켓이 급격히 확장되어 교역의 물량이 많아졌고 단가는 낮아졌다. 그런가 하면, 철도 개통은 중서부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는 농산물 생산지와의 교역의 효율성 (efficiency)과 신속성  (speed)을 향상시켜 이윤을 증대시킨 점도 알아보았다.  

 

이 정도면, ~ 미국 최대의 교역의 교차로시카고의 꿈은 도시 설립 11년 만에 드디어 이루어 지는구나!  시카고의 대도시로의 성장 앞길에는 꽂길 뿐이겠지! 그러나, 운하와 철도를 통해 시카고로 몰려온 물품들이 들어온 즉시 다른 지역으로 운송되어 나갔다면 시카고 시에는 교역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인력과 인프라가 필요하여서 도시 자체의 성장은 미미하였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철도, 운하, 나무 하이웨이의 경제적 낙수 효과가 시카고 도시 성장 자체에는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시카고에서 물품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분배하였는지 판매 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보며 1848년에 일어난 일들이 시카고를 미국 제 2대도시로 만든 기반이 되었는지를 알아보겠다. 실제로, 시카고에서 운하와 철도 개통 직전에 가동된 조직적인 물품 보관과 분배 시스템으로 인해 운하와 철도의 영향이 더 크게 증폭되었고 동시에 시카고 도시 자체도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19세기 중반 미국 경제는 이미 산업화가 빠르게 진척되었고, 지역별 전문화가 확연해진 점을 기억하자. 미 독립이 확정된 18세기 말의 자급자족 경제 시스템은 이미 옛 말이 되어버렸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보면,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옥한 농토를 가진 일리노이, 인디아나 등 중서부는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고, 그것도 자급자족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마켓 중심의 농업 전문이고, 미 동부는 공업과 금융업이 중심인 체재, , ‘동부는 공산품, 중서부는 농산품으로 지역별 전문화가 공고해졌다. 따라서, 지역간 교역의 필수성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크게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여하간에, 물품 보존과 판매 시스템에서도 1848년은 시카고에게 아주 특별한 해이다. 중요한세 사건들을 들자면, 첫째, 1848 1월에 전보 서비스가 시작되어 외부, 특히 동부로부터 거래선과의 사전 연락이 신속 정확해졌고, 둘째, (당시82개의 시카고 비지니스들이 S. Water St.에 모여) 184835일에 조직한 시카고 물품 거래소 (Chicago Board of Trade-CBT)로 인해 물품 거래가 규격화되며 원활해졌으며, 셋째, 곡물 엘리베이터 (grain elevator)가 시작되어 곡물의 보관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 가지 모두 그때 그때 필요하여 제각각 생겼으나 이 세 가지의 시너지 효과는 아주 특출하여 신의 한 수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시카고에서 거래된 주요 물품들은 동부에서 공산품이 들어와 중서부 각 지역으로 분배되었고, 중서부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동부와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  공산품을 내륙 각 지역으로 분배하는 것은, 시카고 시내에 형성된 대형 상가들이, 그리고, (조금 후에 시작된) mail-order사업체들이 담당하였으나, 생산 시기가 정해져 있는 농산물의 경우에는 보관과 분배의 시간적 연결 고리가 복잡하여 보관과 분배, 판매의 시스템이 중요해진다. 이 당시 시카고에서 거래된 농산물은 주로 곡물 (grain)과 가축  (livestock)인데, 이중 곡물의 보존과 판매 시스템을 살펴보도록 한다.

 

시카고에서 거래된 곡물은 소맥 (wheat)과 옥수수 (corn)이다.  흔히, 중서부의 대표적 농산물을 물을 때  옥수수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당시 시카고에서는 소맥의 거래량이 월등히 많았다. 이는, 소맥의 현금 가치 (cash-crop)가 훨씬 높아 농부들이 소맥을 선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맥은 추수 기간이 무척 짧고 추수 시기를 놓치면 상품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는 약점이 있었다. 여기에서 사족 하나를 덧붙이자면, 시카고에서의 소맥 거래량을 늘린 일등 공신은1847년 버지니아에서 시카고로 본사를 옮긴 맥코믹 (Cyrus McCormick)의 맥코믹 공장 (McCormick Works)이다.  맥코믹 공장은 소맥 추수기계 (wheat reaper)를 대량 생산하고, 이를 현대적인 세일즈 작전으로 중서부 농부들에게 판매, 소맥 추수를 제 때에 할 수 있게 하였다.  이 회사는 후에 International Harvesters가 되었다.

 

그 당시 대량 생산되고 추수된 소맥의 거래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처음에는 ‘pit’ 이라 불린 시카고 물품거래소 (CBT)의 매장에 쌓아 놓고 거래를 하였는데, 운하와 철도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시작된 것이 대형 곡물 엘리베이터이다.  농부들이 추수한 곡물 (소맥)을 지역 곡물 엘리베이터에 출납시키는데, 그 자리에서 CBT에서 파견한 조사관 (graders)이 농부들이 가져온 곡물의 양과 질을 명시한 증명서 (grain receipt)를 발부하였고, 농부들은 곡물은 엘리베이터에 넣어둔 채로 이 증명서만을CBT에 가지고 가서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만하면, 거래의 효율성이 충분하게 커졌을 법한데, 곡물 거래의 신속성을 더 높이기 위해 시작된 방법이, 곡물 엘리베이터 한 쪽으로 들어온 곡물을 엘리베이터의 다른 쪽에서 직접 동부로 향하는 선박으로 옮겨 싣는 거래 방법이다.  여기에는 조사관들의 증명서 (grain receipt)에 대한 전격적인 신뢰와 전보서비스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곡물거래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1856년에는 시카고에서 적재한 소맥이 영국 리버풀 (Liverpool)까지 운송된 기록이 있다.

 

 이렇게, 1848년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미주 최대의 교역의 교차로가 되기에 절대 필요한 신속성  (speed)과 효율성 (efficiency)을 충분히 공급하면서1848년을 기점으로 시카고는 모던 도시 (urban city)로의 도약을 힘차게 시작한다. 급격히 늘어나는 상주 인구는 바둑판 같이 시카고 시를 구획하였던 1830년의 톰슨 도면을 북--남쪽으로 카피하며 지리적 경계를 확장, 별 문제없이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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