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역사 이야기 <46>: 2차 Ku Klux Klan (2) “미국은 오직100% 미국인의 나라”

by skyvoice posted Jan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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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KKK의 Imperial Wizard 에반스 와 간행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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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Flappers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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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한 트럼프 위로 집회 (2020년 11월 7일 헐리우드에서
 

                              

 

< 교수>

 

오늘은, 시카고 역사 이야기 #45에서 살펴본 1920년대 미국 북부, 중서부, 서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2KKK 공식 역사의 간략한 리뷰로 시작한다.

 

첫째, 191510, 전직 개신교 목회자였던 William Simmons가 백인 남성 34명으로 Knights of the Ku Klux Klan을 조직하고 추수감사절인 1125일에 조지아주 아틀랜타 Stone Mountain 정상에서 KKK 재건 (그래서, 2KKK)을 훨훨 불타는 십자가와 함께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1920년까지 2KKK는 남부지역 (특히, 조지아 주)에 제한된 미미한 조직에 불과했다.

 

둘째, 19206Southern Publicity AssociationElizabeth Tyler Edward ClarkeWm Simmons의 최측근이 되어2KKK의 이미지를 독실한 백인 개신교인들의 구국 그룹으로 바꾸는 쾌거를 이루어 북부, 중서부, 서부 지역에서 열리는 개신교 부흥 집회나 교회에 달변의 선전책을 파송, 2KKK를 알리고 당당히 공개 초청을 하여, 1924년이 되면 전국 48개주에 6백만까지의 멤버십을 자랑하게 된다. 2 KKK는 전국보다는 로칼에  집중했다.  당연히,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의 love call이 늘어난다.

 

셋째, 192211월 말 아틀랜타Klonvocation (Klan의 전국대회)에서, 창시자 (Emperor)이며Imperial Wizard (National Klan의 대표) Simmons가 강제 은퇴 당하고--어쩌다가? 다음 컬럼에서 쓰기로 한다--, 텍사스 출신 치과의사 Hiram W. Evans Imperial Wizard 되어 2 KKK를 철저한 비밀조직 (Invisible Empire)으로 운영, 영향력을 크게 키웠다. 몇 리더들을 제외하고는 2 KKK 멤버 대부분은 흰 가운과 얼굴 전체를 감싼 모자를 쓰고 불타는 십자가 뒤에 숨어 (?) 있었기에 신분노출의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또한, 로칼 Klan을 철저한 비밀 조직으로 만들었기에 위장 침투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익명성 보장2KK멤버십 급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고, 주류 사회 고위층 가운데에는 소위 closet KKK멤버와 동조자 (sympathizer)가 아주 크게 늘었다. 동시에 아뿔사! 이 익명성 보장이 2KKK아킬레스 건이 되어 KKK 몰락의 물꼬를 튼다.  

 

넷째, 2 Ku Klux Klan, 자신들이 나락으로 떨어진 미국의 청교도적 도덕성을 회복시켜 미국을 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카톨릭, -유태인, 그리고 반-이민 주의를 주창하며 백인, 개신교인, Anglo-Saxon, , 100% 미국인만의 미국을 지향했다.

 

오늘은, 1920년대 미국의 시대적, 역사적, 사회경제적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2KKK가 믿은 미국은 오직 100% 미국인의 나라사조의 내면을 파헤쳐 보려 한다.  잘 아는 대로, Nativism (출생주의), 혹은 원주민 애국심 (nativistic patriotism) -내 나라는 오직 자국민들을 위해서 존재해야-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글로벌 시대인 지금도 건재하여 자주 정치,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유독 미국에서의 Nativism에는 “American Exceptionalism (미국은 특별하다)”라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이 왜 특별한가?   미국은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이니까사고의 점프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망발이라고 하실 터이지만, 그러나 실제적으로 1630년 미국인의 근간이 된 대대적 청교도 이민단의 보스턴 상륙을 목전에 두고 리더인 John Winthrop이 마태복음 5:14을 본문으로 하여, 그 유명한 “City upon a Hill (언덕 위의 도시)”이라는 설교를 하는 중에 그는, ‘우리가 세울 나라는 세계 만방이 주목하여 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나라이니 순수한 청교도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종교적 출생주의는 온도의 차이와 포장지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지난 400년간 꾸준히 사회 선동가나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특별한 미국이라는 신념이 미국인 심리에 특히 뿌리깊게 내린 계기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 (호랑이)으로부터 식민지에서 독립 국가가 되겠다고 미국 (하룻강아지)이 벌린 독립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하룻강아지가 승리할 수는 단연코 없었을 터. 더하여,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한동안 13개 주로 형성된 한 나라가 아닌 13개 독립국가처럼 행동하여 야기된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으면서도 1812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독립을 지켜낸 것을 보면, 미국은 하나님이 세우신 특별한 나라라고 믿었다.

 

“American Exceptionalism” 1848년 멕시칸 전쟁을 치르며 Manifest Destiny (미국의 명백한 운명; 하나님이 미국을 세우시면서 맡기신 소명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라는 것) 가 되어 미국 영토 확장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미국이 스페니시-아메리칸 전쟁 (1898425-1898812)에서 승리함으로써 제국의 반열에 오르고 1차 세계 대전 (1914628-19181111; 미국의 참전은 19174월부터)을 거쳐 슈퍼 파워가 된 것도 미국의 명백한 운명의 성취를 위함이라는 것이다. 때맞추어 1880년대 후반부터 미국 경제가 농업 경제에서 산업 자본주의 경제로 탈바꿈했으니 미국이 슈퍼 파워 위치를 견지하려면--달리 표현하면, 미국의 명백한 운명을 성취하려면-- 청교도적 도덕성과 높은 지능 수준을 가진, 100% 미국인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전인수 식의 억지와 점프가 많은 발상이라 생각되지만 (믿는) 신념이라니 어쩔 수 없지 하다가, 문득 2KKK는 어떻게,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에서 도덕적 위급 상황을 감지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920년에 미국 인구의 51%가 농촌이 아닌 도시 거주민이다. 미국 역사상에서 최초의 일이다. 그 이후 도시 거주민의 비율은 상승 일변도이다. 도시화 (urbanization)는 산업화 (industrialization)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동일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 체계가 개인을 중시한 자유 자본주의가 되는 것과 같은 수순이다. 그리고, 낮은 공동체 의식은 개인으로 하여금 장기적보다는 단기적 만족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1차대전과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은 이런 성향을 부채질하였을 터. 미국에서는1920년부터 금주시대가 시작되었고, 1920년대 내내 경제는 번창하였으며 (‘the Roaring 20s’), 자동차를 포함한 온갖 가전제품들이 시간의 여유와 행동 반경을 넓혀 주었다. 여윳돈도 많아지고, 합법적 음주는 불가능하니 불법 음주를 하면서도 법을 어기는 죄의식 (?)은 옅어지고, 등등. 이런 상황에서 자유분방한 생활 양식이 열병처럼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이런 생활 방식의 변화는 특히 젊은 여성 그룹에서 크게 감지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여성 해방이 1차세계대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20년대에 미국에서 젊은 신식, 선구자적 여성의 모습을 ‘Flappers’ 라고 하는데, 이들은 짧은 헤어 스타일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에 담배를 물고, 재즈 밴드의 생방송에 맞춰 춤을 추면서 자유를 만끽한다. 춤을 추려면 치마길이가 짧아야 하고 다리가 노출되고-- 1925년경에는 치마 길이가 14인치나 줄었어, 쇼킹!-- 음주는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도 필수, 지켜야 할 기존의 관습에는 관심이 별로 없이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이 모든 변화를 보며 2KKK 들은말세이네, 미국이 망해 가는구나하면서 (미국 건국의 근간인) 청교도적 도덕성을 회복한 새로운 미국을 꿈꾸었던 것 같다.  

 

2KKK의 모토, “미국은 오직 100% 미국인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 사회를 지배한 사회진화론 (social Darwinism)을 알아야 한다. 사회진화론 (social Darwinism)에는 여러 갈래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공통 분모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요점인 “적자생존 (the survival of the fittest)”을 세계 역사, 사회, 인종에 그대로 적용하여 (규제없는) 자유 경쟁을 통해서만 사회가 더 좋게 진화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때의 사회진화론은 경제가 앞서 있는 서구 백인사회가 진화된 사회라 보았다. 단적으로, 이때의 사회진화론은 자본주의 (capitalism=자유 자본주의)와 인종주의(racism=백인우월주의)를 과학적,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사회진화론은 백인우월주의 + 미국은 백인의 나라 (white mens country)이어야 한다에서 낮은 지능의 그룹이 섞이면, 미국인의 지능수준을 저하시킨다, 그리고 동, 남유럽 이민과 러시안 유대인 이민은 서유럽 백인보다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라고까지 전개의 비약을 하게 된다.

 

이쯤에서, 미국의 이민역사를 알아보겠다. 우선, 독립 당시 미국의 인구는 3.5 백만 명, 그 중 65-70%가 영국 계통이었다. 독립전쟁과 1812년 영국과의 전쟁 시기에 주춤했던 이민이 1820년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했는데 1880년까지는 여전히 영국, 독일, 아일랜드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온다.

 

이렇게 이민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이민이 통상화 되어있는 미국에도 이민의 세기라고 불린 시대가 있다. , 1820-1920년의 백 년을 일컫는데, 이 백 년간의 전체 이민을 보통 35.9 백만 명으로 본다. 이 중에1880-1920년의 이민이 약 23백만 명이 넘는 65%이다. 그리고1820-1880년의 이민은 12.6 백만 명이다. 숫자뿐 아니라, 1880년 이전 ‘Old Immigrants’ 1880년 이후 ‘New Immigrants’ 이민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1880년 이전의 이민 (Old Immigrants)은 주로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안,  아이리시 등 북-서유럽 출신으로 주로 영어를 사용하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리시를 제외하면 개신교인이고 도시 생활이나 농촌 생활 모두에 익숙하다. 아이리시는 영국의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온 이민이어서, 영어나 영국 시스템에 친숙하다는 잇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흑인 취급을 아주 오랫동안 받았다.

 

반면에, 1880년 이후의 이민 (New Immigration)은 주로 남, 동유럽의 폴리시, 이탈리안 (남부), 러시안 유태인, 보헤미안 등으로 영어를 모르고 미국 체제가 생소하여 어려움이 많았다. 이들은 주로 카톨릭, 유대교인이었고 대체적으로 가난했고 낮은 교육 수준과 미국에서 가치 있게 여기는 기술도 별로 없었다.

 

물밀처럼 밀려오던 New Immigrants1차세계대전이 발발되자 유럽 나라들의 출국 금지 조치로 뚝 그쳤다. 물론 1차대전이 종전되면서 동, 남유럽 이민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고 미 전역에 반-이민정서가 팽배하게 된다이 당시의 반-이민 풍조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기본적으로 1965년까지 미국 이민을 지배한 “1924년의National Origins Act” 이다.

 

이렇게 2 Ku Klux Klan멤버들은 자신들이 Old immigrants100% 미국인이라 생각했고 반-카톨릭, -유태인, 그리고 반-이민 정책을 통해 미국의 청교도적 도덕성을 회복시켜 미국을 구하여, “백인, 개신교인, Anglo-Saxon ,100% 미국인만의 미국을 만들기를 지향했다. 대다수의 2KKK 멤버들은 1880년 이전의 이민 또는 그들의 후손으로 사회,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된 중류층으로 준법, 도덕 정신이 강하고 (civic minded), 도시와 농촌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독실한 개신교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떻게 로칼의 멤버가 되었고,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지역적으로 아주 다양하다특히 여성들의 참여에 다양성이 많다.

 

또한, 몇 경제학자들이 2 KKK 이 근본적으로 반-카톨릭, -유태인, -이민이라는 점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들은, 그 당시 미국 경제가 급격하게 마켓 기업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생겨난 gilded group에 대한 일반시민의 반발이 2 KKK라는 분출구를 만나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고 본다.

 

놀랍게도 2KKK의 몰락은 이 운동이 최고조였던1920년 중반에 시작되는데, 이는 다음 번 컬럼으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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