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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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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 보도와 배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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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래즈 수감수 #85 알카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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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포네의 마운트 올리벳 빈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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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갈멜의 카포네 가족 묘지

 

                                                                                                                                                                    

< 교수>

 

1929214일 오전 1030, 시카고 시청 근처 백주 대로상에서 시카고 경찰을 사칭하며 카포네 갱이 라이벌 갱을 몰살한 밸런타인데이 학살사건이 미국 사회에 주었던 충격은 상상할 수 없게 엄청났다. 후버 (Herbert Hoover) 현직 대통령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포네 잡아 들여 (Get that man Capone!)” 하며 연방 수사국에 전권을 위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카포네 갱 멤버는 물론 어느 누구도 밸런타인데이 학살과 연루해 기소되지 않은 채로 1929년 해를 넘겼다.

 

다 아는 대로, 19291029Black Tuesday뉴욕 증시 폭락이 있었다. 그후 10년간 전 세계는 경제 대공황을 겪었지만, 1929년 말~1930년에는 경제 불황, 설마 그리 오래 가지는 않겠지하면서 카포네 갱에 대해 온 세계의 눈이 미국과 시카고에 고정되었다. 세계 갱들은카포네 갱 좀 봐!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촌뜨기 아마추어일 뿐!”이라며 감탄했다.    

 

드디어1930년 중반, 밸런타인 데이 학살 1주일 후부터 소소한 죄목으로 알 카포네를 귀찮게 하던 연방 수사팀이 비장의 히든 카드를 공개한다. 카포네가 기소될 죄목은 ‘1924-29년의 연방세금 포탈’.

 

금주법 위반이 아니고 연방세금 포탈이라고??? 예상 밖의 발표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 멘붕이 오는데, 카포네는 내 명의로 된 재산이나 수입이 전혀 없는 나를 세금 포탈로 기소한다고? 염려할 것 없어!” 하며 자신의 법률 전담팀의 형사법 전문 변호사를 세법 전문 변호사로 바꾸지 않는 중차대한 실수를 한다.

 

연방 수사팀이 금주법 위반이 아닌 세금 포탈로 가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카포네 갱의 와해를 위해서는 보스 알 카포네를 가능한 한 오랜 기간 연방 형무소에 수감시켜야 하는데, 그 당시 금주법 집행은 로칼 정부의 소관 사항이었고, 그때의 시카고 풍토를 감안하면 금주법 위반으로는 유죄 판결을 받아낼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하여, 1929 10월 말의 증권 시장 폭락, 카포네의 폭 넓은 자선 활동, 그리고 1928년 연방대법원의 판결 (US vs Sullivan)이 작용하였다. 좀 더 부연 설명하자.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카포네는 불법 음주 시장에서 엄청난 수입이 들어오자 뇌물 상납이나 부하 챙기기 외에도 일반 서민을 위한 급식소, 집세, 난방비, 의료비 보조와 푸드바스켓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가난한 서민들에게 많은 실제적 도움을 꾸준히 베풀었다. 마침 1928년 연방 대법원의 판결 (US vs Sullivan)로 불법 수입에도 연방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되었는데, 굳이 금주법 위반으로 카포네를 엮어 그의 자선 활동을 막아, 그렇지 않아도 경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원성을 들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물론, 금주법 위반으로 카포네를 엮게 되면 꾸준히 카포네의 뇌물을 받아먹은 시카고와 일리노이 주의 경찰, 검찰, 그리고 정치인들이 줄줄이 연루되어 정치 풍파가 일어날 것도 당연했고 세금 포탈은 벌금과 함께 연체된 세금 납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모두의 안이한 생각도 염두에 두었을 터.  

 

이렇게 정치인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고 카포네를 위시한 모두가 방심하는 동안, 수사팀은 카포네 갱의 돈의 흐름을 파헤치는데 올인한다.  갱의 돈 흐름을 수사한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 아니, 어쩌자고 연방 수사팀은 세금 포탈이란 죄목부터 발표하지? 증거를 잡았나? 그럼 기소부터 해야 할 것 아냐?  그런데도, 한동안 조용해서 연방 정부라고 별 수 없나 보다했다.

 

드디어, 1931313, 시카고의 연방 대배심원 (Federal Grand Jury)알 카포네1924년도 연방 개인소득세 (federal income tax) 탈세 혐의로 기소한다. 6 5일에는 1925-29년의 소득세 포탈 혐의를, 일 주일 후인 6 11일에는 금주법 위반 담합 (conspiracy) 혐의 하나를 더 첨가한다. 이렇게1931 6 11, 알 카포네는 6건의 세금 포탈과 1건의 금주법 위반 혐의로 정식 기소되었다

 

언론에서는 공공연하게 금주법을 위반한 카포네에게 금주법 위반을 위한 결탁 혐의를 적용해? 말도 안 돼라며 어이 없어 했지만, 연방 정부의 카포네 갱 소탕 작전의 관건은 세금 포탈이었고, 금주법 위반은 그저 양념 체면 치레 (?)용이었다. 하긴, 카포네 갱이 엄청난 뇌물을 곳곳에 상납한 것을 감안하면 금주법 위반자체는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엮이게 될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비껴 가는 것이 현명했으리라.

 

이 연방 대배심원의 기소로 1929 2 14일의 밸런타인 데이 학살이 빌미가 된 연방 정부의 카포네 갱 수사는 2년 만에 일단락되었고, ‘알 카포네 감옥 보내기작전의 성공적 이행은 검찰과 법원의 손에 맡겨졌다. 은행 계좌는 물론 어느 자산, 소득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알 카포네를 세금 포탈로 기소한다고? 무슨 증거를 가지고 정식 기소를 끌어 냈지? 그래도 설마 재판까지 가지는 못할테지? 전 미국, 아니 전 세계의 관심이 온통 시카고로 쏠리는 가운데, 아니나 다를까! 카포네는 6 16, 2년 반의 징역형과 밀린 세금 완납을 조건으로 기소된 모든 혐의에 유죄 (guilty)’를 인정하는 사전 협상 (plea bargain)을 성공시켰다고 언론에 자랑 삼아 떠벌리는 실수를 한다. 그만큼 자신이 넘쳤던 것이리라.

 

그럼 그렇지!”, “알 카포네가 겨우2년 반 동안 징역살이 한다고? 그동안 쏟아 부은 공권력이 아깝네!” 여론이 부글부글. 그래서인지, 아님 사전 계획인지는 몰라도, 윌커슨 (James Wilkerson) 담당 판사는 7 30, 사전 협상 불허와 배심원 재판을 선언하였다. 이에 알 카포네는 유죄에서 무죄 (not guilty)’로 피고 답변 (plea)을 변경하여, “세기의 재판- 알 카포네 세금포탈 케이스 1931 10 6,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시작되었다.

 

카포네 재판 과정을 보기 전에, 연방 수사팀의 카포네 갱 수사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보스를 잡아 들여 카포네 갱을 와해시키라는 후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재무장관 멜론 (Andrew Mellon)은 아이레이 (Elmer Irey) 재무부 특별 정보팀장 (Special Intelligence Unit)에게 소임을 맡겼는데, 아이레이가 실무 책임자로 시카고에 파송한 수사관이 윌슨 (Frank Wilson)이다. 여기서 사족 하나 보태면; 금주법 위반에서 기인된 총기 살인 사건인데 왜 재무부 (US Treasury Dept.)가 수사하나? 할 수도 있는데 미국에서는 마약-금주 위반 조사는 재무부 소관이다. 또 연방 세금 징수도 당연히 재무부 담당이다.

 

시카고의 전담 수사관 윌슨은 어떤 난관을 만나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로 알려진 수사관인데 카포네 재판이 종결된 여러 해 후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수사 초기의 막막했던 상황을 회고하였다: “작은 낌새라도 포착할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시세로의 뒷 골목까지도 누비고 다녔는데, 알 카포네가 새끼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설설 기는 곳에서 이는 불가능이었다…. 소환장을 받은 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적대 감정이나 카포네 조직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극심한 공포로 인해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타운을 떠나곤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기소까지 갈 수 있었나? 이미 언급한 대로, 연방 수사국으로 하여금 사소한 이슈로 카포네를 괴롭히게 하는 동안, 수사팀은 카포네 조직에 갱으로 위장한 수사원을 잠입시키고 카포네의  최측근 한 사람을 이중 간첩으로 포섭하면서 수입이 없다는 카포네가 누렸던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 카포네기 소유한 비밀 도박장의 1926년 장부 3권을 입수하게 된다. 때 맞춰 다른 사건에 연루된 카포네 갱의 자금책, 알 카포네의 형 랄프(Ralph)의 핀컬트 은행 (Pinkert State Bank-시세로 소재) 비밀 계좌 5개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빙고!’ 장부에 암호처럼 쓰여진 이름들과 핀컬트 은행 예금 전표의 필적을 연결하여 카포네의 돈 흐름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한 수사팀은 도박장과 은행에 연관된 증인들을 연방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하며 확보한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세금 포탈로 기소될 수도 있겠다를 감지한 알 카포네는1930 4월에 메틴글리 (Lawrence Mattingly)를 내세워 수사팀과 접촉했는데, 오만한 탓 인지 아니면 상대방을 과소 평가했는지 언제부터 소득이 많았냐?”는 질문에 나는 소득이 없는 세월을 보냈소. 그런데 윌슨씨, 당신 와이프는 어찌 지내시오? (How’s your wife, Wilson?)” 하며 수사팀장 윌슨을 협박하였다.  그래도 계속되는 수사에 6개월 후, 카포네가 1924년에는 $24,000, 1925-29년에는 매년 십만 불의 소득이 있었다며 밀린 세금, 이자와 벌금을 완납할테니 수사를 종결하라고 했던 것을 보면, 카포네는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도 알 카포네를 가능한한 오래 징역살이 시키자라는 연방 정부의 진정한 속내를 짐작하지 못 하였던 것 같다. ‘가능한 한 장기간의 징역형을 목표로 노력한 연방 수사팀은 10 6, 재판이 시작될 때는 알 카포네에게 총 23건의 혐의를 적용하는 데 성공한다.

 

카포네 조직이 정확한 배심원 리스트를 손에 쥐고 배심원들을 뇌물, 공갈과 협박으로 회유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윌커슨 담당 판사, 1931 10 6, 재판을 시작하면서 같은 시각, 같은 빌딩에서 열리는 다른 재판과 배심원을 통째로 맞바꾸어 카포네 측의 허를 찌른다. 재판 과정을 보도한 그 당시의 신문 보도를 보면, 카포네 재판은 연일 이탈리안 아메리칸 갱 멤버를 포함한 방청객과 언론으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뤘을 뿐 아니라, 정부와 카포네 측의 힘겨루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스릴 만점이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재판이 시작되고 11일이 된 193110 17일 밤 1110, 배심원 판결이 발표된다: 23건 중18건 죄목에는 무죄 (not guilty!), 그리고 나머지 5 – 1925, 1926, 1927년의 세금 포탈과 경범죄로 취급된1928, 1929년의 세금 보고 누락- 에만 유죄 (guilty)이다.  밀린 세금과 법정 경비를 받기 위해서는 플로리다의 카포네 집에 차압 서류를 넣어야 한다는 법정 집행관에게 덤벼 들은 카포네, 그 자리에서 법 집행 방해라는 괘씸 죄목을 하나 더 받았다.

 

1931 10 24, 형량 선고 공판에서 윌커슨 판사는 11년의 징역과 5만불의 벌금, 3만불의 소송 비용과 2 1 5천 불의 체납 세금과 이자 벌금형을 확정하고, 상소가 끝날 때까지 보석 없는 쿡 카운티 구치소 수감을 지시한다. 그 후, 형이 확정된 알 카포네는1932 5 4, 아틀란타 연방 형무소로 이송되었다가 그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레즈 (Alcatraz) 형무소에서 1939 11 6일 가석방될 때까지 #85수감인 신분으로 만 7 6개월 15일 간의 연방 형무소 생활을 하였다. 

 

11년 징역형인데, 76개월 복역 후에 가석방이라니? 하겠지만, 카포네는 결혼 전에 얻었던 매독이 수감 중 뇌로 전이되면서 12살 어린이가 되면서 줄곧 모범수였고 의사 소견에는 회복 불가능이었기에 가석방되었던 것이다. 의사 소견대로, 1947 1 25, 4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도 12살 소년으로Chicago Outfit의 명목상의 보스였다. 처음에는 시카고의 마운트 올리벳 (Mt. Olivet)에 매장되었던 알 카포네는1952년 힐사이드의 마운트 갈멜 (Mt. Carmel) 가족 묘지로 이장되었는데, 마운트 올리벳에는 아직도 비석과 함께 카포네의 빈 무덤이 있다. 독실한 카톨릭인 가족, 특히 카포네의 어머니의 특별 간청으로 어렵사리 카포네의 장례 미사를 집례했던 신부는 언론과 교인들의 뭇매를 맞았다.

 

사족 세 마디: 1) 카포네 최측근으로 연방정부의 이중 간첩이 되어 연방 수사팀을 크게 도왔던 사람은 누구? ‘Easy Eddie’라 불린 오헤어 (Eddie O’Hare) 변호사이다. 아주 잘나가던 오헤어 변호사가 어쩌다가 이중 간첩이 되었을까? 혹자는, 독실한 카톨릭이었던 그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이중 간첩이 되었다고 하나, 실제 이유는 미 해군 최초 비행사가 되기 위해 해군 비행 프로그램을 받고 있던 아들 오헤어 (Edward ‘Butch’ O’Hare)이다. 아들을 해군 비행 프로그램에 남아있게 하기 위해 카포네 최측근에서 이중 간첩이 되었던 아버지 오헤어 변호사는 카포네 가석방 일주일 전에 시카고 시내에서 카포네 조직의 총격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미 해군의 메달을 받은 최초 비행사가 되어 2차 대전 참전 중 19431112일에 전사한 아들 오헤어 소령 (lieutenant commander), 1949년에 오픈한 시카고의 오헤어 국제 공항으로 이름을 남겼다.

2) 사후에 알려진 사항인데; 1927년 기네스북 미국에서 최고 갑부였던 카포네가 밀주 사업에서 벌어들인 검은 돈을 합법적인 우유 사업으로 세탁하려 했다고 한다. 이 사업을 추진할 때 카포네가 농장주나 조직원들을 설득하며 보여준 모습은 갱단 보스 카포네가 전혀 아니어서 이 사업이 거의 성공할 뻔했다고 한다.  또한 카포네가 수감 생활 중 아들 (Albert Capone, 2004년 사망)에게 꾸준히 보낸 편지에도 아주 자상하고 박식하고 자애로운 모습이다. 편지 하나가 최근 높은 가격에 경매되기도 했다.

3) 1933-1945년까지 32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 (Franklin Delano Roosevelt- FDR)가 사용한 대통령 전용 차량의 하나가 카포네가 차압당했던 캐딜락 방탄차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사망 소식을 제치고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던 알 카포네의 유죄 판결 후, 반 세기도 훨씬 지난 1990 85-6일 팔머 하우스 (Palmer House)에서 미국 변호사 협회가 카포네 공판 가상 재심을 열었다. 판결은? ‘무죄 (Not Guilty). 이들은, 1931년 카포네가 형사법이 아닌 세법 전문 변호사를 기용하였더라면 1931년에도 연방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1931년의 연방 정부의 세금 포탈 기소가 모래 위에 쌓은 집였다는 의미이리라.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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