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_Bootlegging의미.png 42.2_Bootlegger의질주를풍자한만평.jpg

"Bootlegging", "Bootlegger"의 질주를 풍자한 만평

 

42.3_the Blind Pig prosecutors.jpg

빗발치는 신고도 무시하는 "Blind Pig" 검찰

 

42.4_Green Mill during Prohibition.jpg 42.5_Green Mill after Prohibition.jpg

Green Mill Club

 

42.6_Chicago's gangland fiefs during Prohibition.jpg

금주시대 시카고 갱단 지도

 

                                                                                                                                                                   

 

< 교수>

 

시카고역사 #40#41에서는 미국의 금주시대 1920년대를 큰 그림으로 살펴보았는데 오늘부터는 금주시대를 조금 더 자세하게 미시적 (micro)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미국의 금주시대’? 하면 시카고의 알 카포네’! 한다. 그만큼 1920년대의 시카고에는 알 카포네로 상징되는 조직범죄단 ()의 횡포와 이를 철저하게 비호한 공권력과의 정경유착과 정치부패가 깊었다는 이야기이리라. 2차산업혁명 전야인 1837년에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유자본주의의 실험장으로 출범된 시카고이니 한탕주의 돈 모으기에 영끌하는 사회풍조와 이를 공공연히 이용한 정경유착의 뿌리가 깊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다고 금주시대1920년대 시카고에서의 정경유착과 부패가 여느 다른 대도시보다 유별나게 깊었던 것도 아니었고, 갱단들의 폭력이 더 극심하지도 않았다.  

 

이미 살핀 대로, 흥청거리는 경제와 자유분방한 사회풍조와 함께 시작된 금주헌법으로 밀주의 수익성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거의 모든 도시에서 갱들이 목숨 걸고 밀주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시카고는 불행하게도 뉴욕에서 시카고로 옮겨온 알 카포네가 갱단Chicago Outfit을 장악, 재빠르게 그리고 아주 폭 넓게 밀주사업에 올인하며 밀주시장 독점을 위해 타 갱단들을 초토화시키는 눈부신(?) 활동을 하여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탓으로 총과 돈만이 지배하는 무법천지의 도시, 시카고!”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또한, 연방정부가 유독 알 카포네를 금주시대 부패의 본보기 Public enemy No.1으로 지목하여 카포네 타도에 매진한 이유도 있다.  이 점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나눈다.

 

오늘은 우선, 금주시대 묘사에 많이 등장한 용어들bootlegging, speakeasies, blind pig을 알아본다. ‘Bootlegging’은 법적으로 금지된 술을 판매하는 불법 밀매를 통칭하는 것으로 밀매자를 ‘bootlegger’, 이렇게 판매된 술을 ‘bootlegged (불법) 알코올이라 불렀다. 이와 함께 등장하는 큰 장화(boot)그림은  밀조 술병을 장화 속에 숨겨 옮긴 것에서 기인한다고 하는데, 이 불법 (bootlegged) 알코올이 만연하게 된 것은 금주시대이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부터 알코올에 부과된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용되었다.  세금이 없으니 자연히 술값이 저렴하여,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서민층과 살롱 (salon)에서 뒷거래로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암시장이었던 소규모의  bootlegging  금주법으로 인해 조직적인 대규모 시장으로 커져 수익성 높은 효자사업이 되니 자연스레 조직범죄단의 독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큰 스케일의 불법 알코올 시장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공권력 (경찰, 검찰, 정치인)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떻게 (공권력의) 협조를 얻어 낼까? 뇌물 상납은 기본이고 선거자금을 대어주고, 투표 몰아주기와 투표함 바꿔 치고, 필요하면 선거 폭력도 불사한다. 실제로, 시카고의 한 갱단에서는, 경찰에게 주는 정기적 뇌물 상납과는 별개로, 대낮에 시카고 도로를 달리는 술병을 가득 실은 트럭을 한 번 눈 감아주는 조건으로 트럭 한 대당 경찰관 한 명에게 $5씩 뇌물을 찔러주었다 한다. 이렇게, 연방이나 로칼 정부의 재정이 갱단들의 돈줄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금주법의 비극적인 결과이다

 

금주시대 시카고에서 애용되었던 술집에는  ‘Speakeasy’ ‘Blind pig’  가 있다.  지난 컬럼에서 언급한 대로, 금주시대 시카고에는 10,000여개의 speakeasy와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blind pigs가 있었는 데, 이들의 차이점은 간판이 있고 없고와 제공되는 서비스일 뿐, 술 판매만 보면 두 곳 다 불법으로 운영하는 술집이다. 그래서인지, 스피커시와 Blind pig를 구분하지 않기도 하지만, 금주단속반의 수사 현장을 살펴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Speakeasies (스피커시-주로 복수로 쓴다)에서는  고급스러운 음식도 사 먹고 밴드의 라이브 연주도 듣고 전문적인 쇼 공연도 관람할 수 있어 격조 높은 엔터테인먼트 장소로 인식되어 많은 곳에서는 정장을 하여야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그렇다면 술은? 은밀히(조용하게) 술을 언급하면 (speak easy), 옆 방이나 뒷 방으로 옮겨 술을 서브 받았다.  불법 술 판매의 현장을 덮치지 않으면 공권력도 어쩔 수 없어, 법적인 제재를 크게 당하지는 않아 갱들의 모임 장소로 애용되었다.  1920년대 시카고의 문예부흥을 주도한 많은 연예 그룹들이 스피커시에서의 공연을 발판으로 성공하였기에 문화적 프라이드도 강하였던 금주시대 시카고의 스피커시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은 카포네 조직이 운영하였던 Green Mill Cocktail Lounge (혹은Green Mill Jazz Club, 4802 N. Broadway)인데, 바 안쪽 끝에 비밀 지하 턴넬이 옆 건물로 연결되어 있어 카포네가 단속반을 따돌릴 때 애용했다고 한다. 금주시대 이후 이곳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술집이 되어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Billy Holiday) 등 유명인사들이 거쳐 갔다. 아직도 성업 중이다.   

 

스피커시와  대조적으로  blind pig (무허가 술집?)는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아무런 표시가 없어 겉으로는 여느 주택과 구분이 되지 않던 술집으로 건물 옆의 입구를 노크하면 peep hole (문에 난 작은 구멍)로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곳이다.  Blind pig는 금주시대 이전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주로 저소득층이 이용하였던 소규모 술집으로, 소수민족 자선기관들의 자원확보 장소로 이용되는 등 긍정적인 공헌도 있었는데, 술판매가 불법이 되니 흥미거리로 박제 동물을 벽에 걸어 두고 술을 파는 불법 무허가 술집이 되었다. 금주단속반이 주로 덮친 곳도 blind pig였고, 시민들이 시정부에 고발한 곳도 blind pig 가 절대다수이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의  빗발치는 불법 술집 고발을 쿨쿨 잠만 자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공권력을 ‘blind pig검찰이라 불렀다.  이외에도, 의사의 처방전으로 술구입이 가능한 7,300여 개 약국이 있어 을 버는 일이라면 열심이었던 시카고인들에게 애용되었다.

 

누구나 시카고의 조직범죄단 ()의 보스?’ 하면 알 카포네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조직 Chicago Outfit  대담하고 조직적인 폭력으로 금주시대 시카고를 종횡무진 했다. 그러나 실제로1920년 시카고에는 bootlegging에 연관된 갱단이 적어도 12개가 있었다. 12개 갱단이 불법 알코올 사업을 둘러싸고 치고 받는 싸움을  살펴보기 전에 시카고의 갱단 역사를 아주 간단히 알아보자.

 

시카고 갱단의 역사는 최소 1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0년도 인구 8만 명의 시카고에는 단지 9명의 치안집행관 (marshal)이 있었을 뿐 경찰은 없었다.  1855년에야 최소한도 규모의 경찰을 만든 시카고 시의회는 같은 해 시카고 시내의 모든 건물을 3 미터 정도 들어 올려 하수구를 설치할 자리를 마련하는 조례를 통과시킨다. 이는, 습한 지반에 돌을 깔고 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탱하게 만든 것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는데, 20년 동안 배설물을 시카고강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시카고에 하수도를 설치하여 공공위생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올려진 건물 밑의 장소가 갱단들의 활동무대가 된 것이다.

 

초기 갱단 중에 가장 강력한 그룹은 버드나무 아래 (Under the Willows)”이었고, 그 두목은 영국인 이민자 플란트 (Roger Plant), 그는 주로 사창가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시카고의 진정한 갱단 보스, , 범죄왕 (crime lord) 1879년 뉴욕에서 시카고로 이주한 맥도날드 (Michael Cassius “King Mike” McDonald)이다. 그는 선출된 정치인을 뇌물로 매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원하는 정치인에게 선거자금을 두둑하게 대어주고 부하 똘만이들에게 표 몰이’ ‘투표함 바꿔 치기등을 지시, 선거에서 승리하게 하며 시카고와 인디아나 주의 도박과 매춘, 그리고 시카고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오죽하면, 그의 도박장 ‘The Store’비공식 시카 고시청이라고 불렀을까? 

 

시카고에서의 범죄조직과 정치 밀착은 이렇게 맥도날드에게서 시작되어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된다.  King Mike를 포함한19세기의 갱단 보스들은 주로 아이리시였고, 그들의 주요 무대는 도박과 매춘 시장, 주 특기는 소매치기와 강도질. 그리고 작은 스케일의  공갈 착취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금은 없어진 카브리니 그린 자리에 있었던 이탈리안 빈민가) “Little Hell” 출신의 이탈리안 갱들이 활동을 시작하였고, 1920 1 17일에 시작된 금주시대에는 갱단의 bootlegging몰입과 함께 이탈리안, 특히 시칠리안 (Sicilian)들이 시카고의 조직범죄단을 장악한다. 시카고에서 대다수의 아이리시 갱들은 불법인 조직범죄활동보다는 합법적인 정치활동에 전념하는 대신, 조직범죄단의 뇌물을 상납 받아 실속을 챙긴다. 이렇게, King Mike맥도날드에서 시작된 갱단들과 시카고 정치의 밀착은 1920년대에도 이어져 내려왔다.  

 

1920년도 bootlegging에 연관된 12개의 갱단 중에 가장 먼저 불법 알코올 사업에 뛰어든 조직은 현재의 일리노이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 지역인 Little Italy 출신 제나 형제 (Genna Brothers) 이다. 이들은 산업용 알코올 가공 허가를 받아1022 테일러 스트리트 공장에서 생산된 산업용 알코올을 희석시켜 마시기 좋은 일반 소비용 알코올로 만들어 불법 판매하였다. 여기에서 얻은 높은 수익으로 맥스웰 스트리트 경찰서의 경찰들과 주 검찰청 직원에게 두둑한 뇌물을 상납한다. 다른 갱단들이 이를 그냥 묵과할 리는 없을 터, 1920 2 2일 앤라이트 (Maurice Enright) 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총격 살해당한 것을 시작으로 시카고에서는’Beer War (맥주전쟁)’ 로 불리는 갱단들의 무자비한 세력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이중에서, 1920 5 11일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살해당한 콜로시모 (Jim Colosimo)는 알 카포네를 시카고로 이주시킨 갱단의 보스이었기에 시카고 갱단 역사에 특기된다.  

 

콜로시모는 시카고 역사에서 가장 부패한 시의원으로 알려진 캐나 (‘Hinkey Dink’ Kenna)와 커흘린 (‘Bathhouse John’ Coughlin)의 하수인으로 시작하여 1912년 시카고의 매춘사업을 완전 장악하며 한 달에 5만불의 순수익을 챙겼던 갱단 보스인데,  방만한 사업을 총괄할 부관으로 뉴욕 부르크린 갱 토리오 (Giovanni “Papa Johnny” Torrio)를 시카고로 불러온다. 겉으로 과시하는 것을 싫어하였던 토리오는 콜로시모의 조직 안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세력을 굳혀간다. 많은 이들이, 미해결 사건으로 처리된 콜로시모의 살해도 토리오의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사건 이후, 토리오는 콜로시모의 갱 조직을 장악하여 bootlegging에 뛰어 들었고, 번창(?)하는 조직 관할을 위해 1921년 브루클린에서 22세의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를 데려온다. 

 

시카고에 정착한 알 카포네는 1922년 자신의 가족과 브루클린의 폭력배로 뼈가 굵은 형제들을 포함한 온 집안을 시카고로 이주시키는데, 카포네의 뛰어난 보스 능력 때문인지 아님 그의 형제들의 묻지 마폭력 사용 때문인지, 이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리오의 파트너가 되어 1924년 말까지 이 갱단은 토리오-카포네 갱’ Chicago Outfit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알 카포네는 실질적으로는 포주 (pimp)역할에 전념하였으며, 눈가리개 용으로 중고 가구점 (second hand furniture store 2222 S. Wabash Ave)을 오픈하여 중고가구상 알 카포네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녀, 이웃들은 하나같이 카포네가 성공한 가구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이 곳은 카포네 갱의 총 본부였다. 1923-27년 시카고 시장을 지낸 디버 (William E. Dever)가 선거 공약, ‘금주법의 철저한 시행 1923년 말부터 시도하여 시카고 경찰과 갱단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듯하자, 곧장 인근 교외 시세로로 본부를 옮긴 토리오-카포네 갱은 시카고에 더하여 시세로와 인근 교외지역에서 정치인 매수와 함께 타 갱단들과 세력 전쟁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특히, 1924년 시세로 시의 선거는 갱들의 폭력으로 얼룩졌는데,  4 1일 알 카포네의 형 프랭크가 평복 차림의 시카고 경찰에 의해 총격 살해되고, 프랭크 카포네의 장례식장에 2만불 어치의 화환을 보냈던  노스사이드의 갱 보스 오배니온 (Dion O’Bannion) 1924 11 10일 자신의 꽃 가게에서 살해당하는 등 라이벌 갱단들의 총격 살해가 커지자,  몇 번의 살해 미수와 9개월의 감옥살이를 경험했던 토리오는 1924년 말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이태리로 역 이민한다.

 

토리오의 퇴장으로 1925 Chicago Outfit의 유일무이 진정한 보스가 된 알 카포네, 1931년 세금 포탈로 감옥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7년간 시카고의 조직범죄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는 데, 1929 214일 백주에 시카고 시청 근처에서 벌어진 밸런타인데이 학살을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번 칼럼에서 다루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6 시카고 역사 이야기 <46>: 2차 Ku Klux Klan (2) “미국은 오직100% 미국인의 나라” file skyvoice 2023.01.03
45 시카고역사 이야기 <45>: 1920년대 미국의 2차 Ku Klux Klan (1) file skyvoice 2022.11.11
44 시카고 역사 이야기 <44>: 알 카포네 드디어 재판에 회부되다 file skyvoice 2022.10.21
43 시카고 역사 이야기 <43>: Bootlegging을 둘러싼 갱단 폭력의 백미 (白眉) file skyvoice 2022.10.05
» 시카고 역사 이야기 <42>: Bootlegging을 둘러싼 금주시대 정경 유착 file skyvoice 2022.09.21
41 시카고 역사 이야기 <41>: 금주시대1920년대 미국과 시카고의 모습 file skyvoice 2022.09.06
40 시카고 역사 이야기 <40>: 1920년1월16일, the Last Call file skyvoice 2022.08.24
39 시카고 역사 이야기 <39>: 최남부지역 (The Deep South) 흑인의 1차 대이동 file skyvoice 2022.08.15
38 시카고 역사 이야기 <38>: 1919년 Red Hot Summer의 인종 폭동들 file skyvoice 2022.07.28
37 시카고역사 이야기 <37>: 1918년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 file skyvoice 2022.07.06
36 시카고 역사 이야기 <36>: The Great War, 1차 세계대전 드디어 종전 file skyvoice 2022.06.20
35 시카고역사이야기 <35>: The Great War -일차세계대전과 미국/시카고 (2) file skyvoice 2022.05.18
34 시카고역사<34>: 1915년 7월24일 아침의 시카고 강 1 file skyvoice 2022.04.22
33 시카고 역사이야기 <33> The Great War -1차 세계 대전과 미국/시카고 (1) file skyvoice 2022.04.12
32 시카고역사이야기 <32>: 시카고디펜더 (The Chicago Defender) file skyvoice 2021.11.16
31 시카고 역사 이야기 <31>: 1906년 월드 시리즈, 시카고에서 열리다 file skyvoice 2021.09.28
30 시카고역사이야기<30>: 미국 최초의 헐리우드, 시카고 file skyvoice 2021.09.08
29 시카고역사이야기<29>: 시카고 다운타운의 ’죽음의 뒷골목’ file skyvoice 2021.08.21
28 시카고역사 이야기<28>: Forever Open, Clear, and Free 레익프론트 file skyvoice 2021.08.06
27 시카고역사이야기<27>: 20세기 여명의 시카고 (2)- 1909 시카고 플랜 file skyvoice 2021.07.1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