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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_임시병원모습_1918-spanish-flu-struggle to bury the Dead.jpg 37.2_임시병원모습_Naval Training Station, San Francisco Drill Hall.jpg

임시 병원 모습

 

37.3_OIP.jpg

 

37.4_1918 overwhelmed health workers Tribune.jpg

 

37.5_chicago-nurse-pandemic-flu.jpg

 

37.6_spanish-flu-philadelphia-navy-yard.jpg

 

 

                                                      

<김 신 교수>

 

공식적으로, 1차세계대전은 19181111일 종전되었다. 그리고 곧장, 14,000명 러시아 파병 미군 (AEF-Russia)을 제외한 유럽 파병 미군의 본국 귀환과 해산이 시작되었다. 군대만 빛의 속도로 치러진 전시 체재에서 비 전시(평화) 체재로의 복귀 트라우마를 겪었던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사회 전반이 마구잡이 질풍노도의 기간을 보냈다. 그 당시의 트라우마 표출 양상이 현재 코비드19을 겪으며 그저 나와 다른 이들에게 분노를 쏟으며 총기를 휘두르는 현 미국사회를 보는 듯하여 만감이 교차한다. 차치하고, 이제부터 역사적으로 간과했던1차대전의 지대한 영향을 하나씩 보려 하는데, 오늘은 우선 1차대전 승전 축하 열기에 얼음물을 확 끼얹었던 “1918년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을 살펴본다.

 

“1918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이하”1918 팬대믹이라 함--은 총 3차례 감염 파동 (wave)을 일으키며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갔다. 첫 번째 웨이브는 1918년 봄, 두 번째 파동은 1918년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잠시 멈춘 듯하다가 세 번째 파동이 1919년 초에 시작되어  늦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니까 1918 팬대믹은 1918년 봄부터 1919년 봄까지 1년남짓 지속된 팬대믹이다.  3번의 파동 중에 가장 극심하였던 것은 두 번째 파동이다. 어찌해서? 두 번째 파동은 1차대전 종전과 맞물리면서 본국으로 귀환하는 파병군인들에 의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어느 한 곳도 예외 없이 그 당시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 (1/3)5억명이 확진 되었고, 1918 팬대믹의 전체 사망자 대다수가 2차 파동에서 발생하였다. 그 당시 한국에도 역병으로 순식간에 한 마을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귀환한 일본 군인들에게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전 세계의 사망자 수가 5천만 명으로 추정된1918년 팬대믹은 2022년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치사율이 높은 세계적 유행병으로, 1918년 한 해의 사망자 수가 유럽인구의 1/3을 희생시켰던 그 유명한 14세기의 Bubonic epidemic (흑사병) 4년 간의 사망자 수와 같았다고 한다. 물론 확실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혹자는1918 팬대믹으로 그 당시 세계인구의 3퍼센트가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미국에서는 줄잡아 25백만명 확진자가 발생, 그 중67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팬대믹으로 미국 인구의 평균 수명이 12년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겨우 일년 간 지속된 팬대믹인데, 12년이나 평균수명이 줄었다고? 그건 아니지! 하겠지만, 1918년 독감의 특성을 보면 수긍이 간다. , 이 독감은 감염 후 사망에 이르는 기간이 그야말로 눈깜짝할 동안이다.  하루 전까지도 건강했던 이들이 감염 후 24시간 내에 사망한 사례가 아주 빈번하였다. 또한, 이 독감은 건장한 젊은 층을 주로 희생시켰다.  사망자의 평균 수명이 28세이었으니까. 1차대전 중 내려진 보도 통제로 종전 후에야 알려진 사실인데, 1차대전 유럽파병 미군 중에 해군 (Navy) 40%, 육군 (Army) 36%가 이 독감에 확진 되었고, 전투에서 사망한 숫자보다 이 독감으로 유럽에서 사망한 파병 군인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아직까지도1918년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의 명확한 기원을 모른다. 그러나, 이 팬대믹의 알려진 첫 확진자들은 미국 캔사스 주 포트라일리 (Fort Riley, Kansas)Funston 군사기지에서 유럽 파병 훈련을 받고 있던 100여명의 신병들이다. 1918311일의 일이다.  일주일 후에는 5백명으로 늘어났던 신병 감염자들은 오한(chills), 발열(fever)과 피로감 등 감기같은 증상을 며칠 겪은 후에 회복되었기에 그대로 유럽행 군함에 올라19183월 서부전선에 배치된 84,000명 미군에 합류한다. 어느 누구도 Funston 기지에서의 발병이 그 무서운 스페니시 독감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로 4월에는 118,000명의 미군이 유럽에 파병되었다. 191845, 처음으로 Haskell, Kansas18 사례의 독감 (influenza) 환자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연방정부 주간 보고에 나오기는 했지만, 미 국내의 감염은 미미하였다.

 

이렇게 1918 팬대믹의 첫 번째 감염 파동은 끝났다 했는데, 독감 감염 사실을 모른 채 파병된 미군을 통해 유럽전역에 퍼졌고 그곳 유럽에서 세기적 유행병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흔히, “스페니시독감 팬대믹이니 스페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잘못된 명명이다. 이 잘못된 이름이 1920년대 미국 사회의 극심한 반-이민 사조를 부추긴 것은 아닌가 싶어지니, 코비드19우한 (Wuhan)”, 또는 “China바이러스라 부르는 것에 대한 우려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럼, 왜 전선, 후방을 막론하고 유럽 전역에 감염된 이 유행병을 스페니시 독감이라 불렀는가?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유럽 전역에서 유일하게 보도 통제가 없었던 곳이  중립을 지킨 스페인이었기에  오직 스페인 언론만이 독감 팬대믹을 보도할 수 있었고. 또한 스페인 언론에게도 군인들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 민간인의 감염 상황 보도는 절대 불가이었기에 그저 스페인에 한정된 감염으로 인식되었다 한다. 이렇게, 유럽에서 만연하던 1918 팬대믹이 진정한 세계적 팬대믹이 된 계기는, 언급한대로, 1차세계대전 종전이다.

 

그러나 기실, 미국 내의 1918 팬대믹 2차 감염 파동은 1차대전 종전 2달 전, 19189월 보스턴 근교의 미 육군 군사기지 Camp Devens와 보스턴 시내의 해군 기지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Camp Devens의 상황이 아주 심각하였다. 한 달도 안 되어 기지 주둔 군인의 25%14,000명이 감염되고 그중757명이 사망하였다. 이 역병이 군사기지의 담을 넘은 것은 순식간이고, 미 전역에 2차 감염이 크게 상승한다. 191810월 한 달에만 195,000명의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미국의 2차 감염 파동은 잔인하였다. 이에 더하여 1차대전 종전으로 3백만이 넘는 군인들이 민간인으로 미 전역에 흩어지면서 확산에 가속도가 붙게 된 것은 당연지사!  

 

시카고에서도  1차세계대전 종전 2달 전인 19189111918독감 팬대믹 2차 파동이 시작된다. 어떤 경로로? 다운타운에서 30마일 떨어진  Great Lakes Naval Training Station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에 의해.  불과 며칠 후인 9 19일 군인들의 휴가가 전면 취소되었으나, 이미 시기를 놓쳤는지 9월 말부터 독감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아주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시카고에서 1918 9~11월에 8,500명이 이 독감으로 사망하였다. 특히, “Black Thursday (암울한 목요일)”로 불린1918 10 17일에는 단 하루 동안에 381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새로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 날의 사망자 수가 워낙 많아서 사망자를 안치할 관이나 관을 운반할 차량이 동이 나는 통에, 관 없이 전차로 묘지로 운반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독 20-30대 연령층의 건강한 청년들을 강타한 이 유행병을 미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급격히 늘어나는 독감 확진자 치료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까? 시카고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확실한 감염 경로나 원인을 모르는 채, 시카고는1918 9월 곧장 사람이 많이 모일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어느 누구나 집 밖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특별 (임시) 조례를 통과시킨다. 그리하여, 극장, 영화관, 술집, 야간 학교는 문을 닫게 하였고, 정부 기관은 시간 예약제로 운영하였으며, 공공 장례식은 전면 금지, 가족 장례식도 참석인원을 10명 이내로 제한하였으며, 공장 근무시간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는 운동경기 참관, 학교 등교, 버스전차 탑승도 거절 당하였고 공공위생 교육을 강화하여 독감 확산 방지를 꾀하였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잠깐! 학교를 계속 오픈했다고? 그랬다! 온라인 클라스가 없었던 그 당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공립학교 폐쇄 조치를 취했으나, 미국에서 학생 수가 많기로 1,2위를 다투던 뉴욕 시와 시카고 교육청은 공립학교의 대면 클라스를 고집했다. 이유는 가정보다 학교의 환경이 훨씬 더 위생적이라는 것. 이 주장은 사실이었다. 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말, 20세기 초 뉴욕과 시카고에서의 급진적 개혁운동의 성공 덕이었다. 여하간,  모든 조례가 적용되지 않았던 유일한 경우가 19181111, 24시간 계속되었던 종전 축하 파티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잦아들 것 같던 독감 감염은 다시 산불 (wildfire)이 되었다.

 

1918년 팬대믹은 H1N1 flu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역병이다. 물론, 이 사실은 먼 훗날에 밝혀진 일이고, 그 당시는 이 독감 유사 (flu-like) 역병이 무엇 때문인지, 어떻게 예방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정말 아무 것도 몰랐기에, 위에 열거한 비-의약물적 조치만을 취하며 요행 (?)을 바랐던 것 같다.

 

그 당시 미국은 독감 환자를 어떻게 치료했을까? 병원 시설에 비해 턱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기존병원이 아닌,  대학교 강당, 체육관 등을 개조한 임시 병원 (makeshift hospital)에 수용했다. 치료는 어떻게? 특별한 치료제가 없으니 그저 심한 증상을 조금 완화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해서, 많은 의사들이 처방한 약이 아스피린이다. 마침, 바이엘 (Bayer)가 독점했던 아스피린 특허가 1917년에 끝나 군소 제약회사에서 아스피린 생산을 시작했기에, 가격도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그래서, 독감 환자에게 하루 30 그램의  아스피린 복용이 의례껏 처방되었는데. 아뿔싸! 아스피린 30그램은 독극물 수준이라는 것.  이 아스피린으로 오히려 죽음을 더 앞당겼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하겠지만, 2020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그래도, 그 당시 환자 치료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뭐니해도 심각한 의료진 부족이었다. 이는, 많은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력들이 1차대전 수행을 위해 차출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각 도시마다 의료진 확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의대 재학생들을 의료진에 투입했고, 간호사 속성 프로그램도 개설하여 수강생들을 일선 치료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카고를 비롯한 도시들이 발빠르게 조치를 취하면서 2차 감염파동은 조금씩 누그러져 갔다. 그런데, 2차 감염파동을 너무 늦게 인식한 리더 때문에 참혹한 피해를 보았던 필라델피아가 생각났다. 필라델피아의 톱 닥터 Dr. Wilmer Krusen은 늘어나는 확진자들이 스페니시 독감이 아닌 일반 감기 환자라고 믿어, 928일의 대대적인 Liberty Loan 퍼레이드를 허가했다. 그리고, 퍼레이드 후 10일 안에 1,000명이 사망했고 200,0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미국 내에서의 3차 파동은 1919년 늦봄까지 이어졌는데, 2차 파동같이 극심하지는 않았다. 1919년 초여름에, 미국에서의 스페니시 독감 팬대믹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 아무도 모른다. 집단 면역이 이뤄졌었나? 추측할 뿐이다. 그 당시 한 종교학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살육의1차세계대전을 거행한 인류에게 노하신 하늘이 스페니시 독감을  보내셨다고 했다던데, 하늘의 진노가 그쳤던 것인가?  1918년 이후 많은 놀라운 의학적 발전이 있었다. 우리가 가을이면 접종하는 독감예방주사 (flu shot)도 그 결과이다. 연방질병예방국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200,000명 정도의 독감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그중 3,000명 내지 49,000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정기적인 독감 (flu)말고도, 우리는 많은 여러 바이러스 역병을 겪으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3년차로 접어든 코비드 19가 덮칠 때까지는.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을 못 살게 했던 흑사병 역병이 1629-1631 년 이태리를 강타했던 사실을 아는가? 그때, 베니스(Venice), 파르마(Parma), 베로나(Verona)에서는  도시 인구 절반이 사망했었다.  플로렌스 (Florence)도 절반은 아니지만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단 한 명의 주민도 희생되지 않았던 곳이 인구 30,000명의 페라라(Ferrara )였다. 어떻게? 작금의 용어로, 국경 봉쇄 (외부에서 오는 자는 무조건 1주일 성 밖에서 격리), 감염자 격리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성 밖의 병원 치료 시설로 격리하고 치료진이 매일 나가서 치료해 주었다), 집 안팎의  철저한 위생 관리--마시는 물은 끓이게 하고, 땅에 침 뱉기는 완전 금지, --, 그리고 약초, 오일과 극소량의 뱀의 독을 첨가한 치료제를 개발했다.  이 모든 것이 페라라 시의 중세 문헌, “Integrated disease management”에 기록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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