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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월드시리즈 게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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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10월 11일 시카고 트리뷴 헤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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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끝나자 필드에 몰려든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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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잇삭스 빅토리 퍼레이드에 몰려든 군중

 

 

 

<김 신 교수>

 

지난 번 칼럼,  시카고 역사 이야기 30에서 우리는, 1910년 대 시카고가 흑백 무성영화 산업의 견인차였으며 메카이었기에 미국 최초의 할리우드는 바로 시카고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의 영화 산업 하면 으례히 “Sunny 캘리포니아!” 했기에 조금은 의외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은, 20세기 초엽 시카고 주민들의 스포츠 사랑을 1906년 월드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겠다. 우선,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월드 시리즈(World Series), 뭔 소리?”라고 하실 분들을 위해 월드 시리즈 이야기로 시작한다

 

월드 시리즈는 미국 메이저 프로 야구의 양대 리그인 내쇼날 리그(National League-NL)의 챔피언팀과 아메리칸 리그(American League-AL)의 챔피언팀이 자웅을 겨루어 세계 (World) 챔피언을 탄생시키는 미국 프로 야구의 연례 행사, “the Fall Classic” (가을의 전통 고전) 이다. 매년 10월 말, 두 리그의 챔피언 팀의 도시를 왔다 갔다 하며 the best of 7 경기 (한 팀이 4 경기의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경기를 지속하는) 방식으로 열린다. --몇 번의 best of 9게임도 있었지만 best of 7이 정착됨. 2020년 월드시리즈는 1020일부터 아메리칸 리그의 탬파 베이 레이스 (Tampa Bay Rays)와 내쇼날 리그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Los Angeles Dodgers)팀이 겨루어 다저스가 프로 야구 세계 챔피언 (World Champion)이 되었다. 2021년에는 오는 1026일부터 열릴 예정인데, 어디서, 어느 팀일지는 물론 아직 모른다. 각 리그의 시즌이 마감되지 않아 각 리그의 챔피언 팀이 확정되지 않았으니까.

 

월드 시리즈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903년에 시작되어1904년과 1994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지속되었으니 2021년은 116회 월드 시리즈이다. 1904년과 1994년은 왜 월드시리즈가 없었지?  1994년은 선수들의 파업으로 인해 시즌이 일찍 끝나는 통에 열리지 못했지만, 1904년은 뉴욕 자이언트 소유주 (John Brush)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1904년 당시, 내쇼날 리그는 전통과 실력이 강력한 팀들이 즐비한 반면에, 역사가 일천한 아메리칸 리그는 실력이 도토리 키 재기 같이 고만고만한 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이언트 소유주 브러쉬씨는, 여유만만하게 내쇼날리그 챔피언이 된 자이언트와 아주 어렵사리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이 된 보스턴 아메리칸과의 세계 챔피언 겨루기를 한다는 것은 빈정도 엄청 상하고 무엇보다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하며, 월드 시리즈 없이도 자이언트는 이미 미국 프로 야구의 (월드) 챔피언임이 입증되었다고 자이언트를 불참시켜 월드 시리즈를 증발시켰다. 성공적이었던 1903년을 감안하면 재정적 손실을 입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까짓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코흘리개 같은 팀과 챔피언 자리를 겨룬다? “Oh, NO, NO.” 했던 것이다.

 

3회 월드시리즈는 1906 10 9일부터 10 14일까지 시카고에서 열렸다. 시카고 한 도시에서? YES! 어떻게? 내쇼날 리그 챔피언팀과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이 모두 시카고에 소재한 팀이었으니까. 시카고 컵스 (Chicago Cubs)는 내쇼날 리그 챔피언이었고 화잇삭스 (White Sox)는 아메리칸 리그의 챔피언이었던 것. 그 당시 시카고 인구는 2백만이 채 못되는 18십만 명 정도인데, 프로 야구 메이저 팀이 2팀이나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시카고에는 마이너 야구 팀도 여럿 있었고 야구장도 시내에 여럿 있었다. 한마디로, 시카고는 야구 매니아의 도시였다. 그래도, 시카고에서 월드 시리즈가 열릴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1906년 월드 시리즈(the World Series) 열기로 온 시카고가 얼마나 후끈 후끈 뜨거워 졌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실제로, 화잇삭스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으로 확정되자 시카고 시내 전차와 버스에서 들리는 함성으로 도시가 흔들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트리뷴의 헤드라인이 엊저녁 시카고는 야구에 완전 미쳐 있었다 –Last night Chicago was baseball  mad’ 였다. 말해 무엇하랴!   

 

좀 더 자세히 보자: 지금은 컵스와 화잇삭스의 실력이 별 차이가 없지만, 1906년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컵스는 프랭크 챈스 (Frank Chance)를 위시해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여럿 포진하여 향후 90년간 어느 팀도 깨지 못한 최다승리 (154게임 중에 116번의 승리-76%의 승률) 시즌으로 일찌감치 내쇼날 리그 챔피언이 되었고, 아메리칸 리그 6번째 팀에서 시작한 화잇삭스는 투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의 실력이 별 볼일 없는 최저 타율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어쩌다 보니 챔피언이 된 케이스. 오죽하면, 그 해의 화잇삭스 별명이 히트 없는 신동 배회자 (Hitless Wonders (Wanders)’ 였을까? 

 

선수들의 실력뿐 아니라 컵스와 화잇삭스는 팬들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도 판이하게 달랐다. 컵스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시카고 정착 역사가 길었던 서, 북유럽 계통 주민이 지지 기반인 반면에, 화잇삭스는 남, 동유럽 출신으로 시카고에서의 정착기간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서민층이 주축이었다. 한 마디로, 컵스는 그 당시의 올드 타이머들 (Old Timers), , 중상류층의 팀이었고 화잇삭스는 뉴 커머 (newcomer)의 팀이었던 것이고, 경제계층, 인종에 따라 주거 지역이 확연히 구분되었던 1900년 대 초 시카고에서 컵스는 북부지역 주민들 (northerners), 화잇삭스는 남부지역 주민들 (southerners)의 팀이었다. 이 점은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여하간에, 코미스키 (Charles Comiskey)가 미네소타 센트 폴 (St. Paul, MN)에서 시카고로 옮겨왔던 화잇삭스 --화잇 스타킹 (White Stocking)에서 화잇삭스가 됨-- 1901 7월에야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였고, 컵스는 1885년 부터 이미 메이저 리그의 주요 팀이었다.  각 팀의 전용 구장은? 그 당시 화잇삭스는 3번째 사우스사이드 팍 (South Side Park III)을 전용 구장으로 사용했는데, 남쪽39 (현재의 퍼싱 Pershing Rd) 북쪽, 웬워스 (Wentworth)와 프린스턴 (Princeton) 사이에 위치한 이 구장은, 근처의 그 유명한 유니언 스탁야드에서 도살당한 수많은 가축들의 고약한 냄새가 허구헌날 구장 하늘을 덮고 있었다고 한다.  코미스키는 1910년에 조금 더 북쪽에 코미스키 팍을 세워 현재에 이른다.  컵스는?   1893년 부터 1915년까지, 컵스의 전용 구장은 두번째 웨스트사이드 팍 (the second West Side Park)이었다. 이 구장은 현재의 일리노이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메디컬 센터 자리에 위치한 것으로 1905년에 이미 private box를 설치한 구장이었다. 컵스는 1920년에 이곳을 떠나 현재의 위글리 필드로 옮기는 데, 위글리 필드와 웨스트사이드 팍 2사이에 재미있는 공통점이 눈에 뜨인다. , 집주인이 관전 자리를 팔 수 있을 정도로 두 곳 다 특정한 위치에 있는 주변 건물에서는 게임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컵스와 화잇삭스이니 팬들의 라이벌 경쟁 또한 뜨거워서 술집, 길거리에서 주먹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고, 월드 시리즈 게임 시간에는 시청의 업무도 중단하고, 전차의 운행을 비롯한 모든 움직임이 올 스톱, 시카고는 ghost town 같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특히 전문가들이) 해보나 마나 한 게임하며 컵스 월드 챔피언에 몰빵했던1906 10 9일 부터 6일간 열렸던 월드 시리즈의 실제 전적은 어떠했을까? 첫 번째 게임은 화잇삭스, 두 번째는 컵스, 세 번째는 화잇삭스, 네 번째는 컵스 승리로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게임에서 화잇삭스는 신들린 타력으로 컵스를 누르고 월드 챔피언이 되었다. 어찌 이런 일이? 팬들, 특히 화잇삭스 팬들은 그동안 올드 타이머에게 밀렸던 한을 풀어내듯 필드로 몰려 내려왔고, 월드 시리즈가 끝난 다음 날에 컵스 팬은 두문불출하며 술로 패배를 슬퍼했고, 화잇삭스 팬들은 승리의 기쁨을 길거리에서 요란스럽게 만끽하였다고 한다.

 

!  1906 10 9일과 10일에 시카고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넋이 나갔던 컵스는 전열을 재정비하여 바로 그 다음 두 해, 1907년과 1908년 월드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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