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2 17:26

시카고 겨울연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시카고겨울연가.jpg

 

 

<김태준 목사 / 살렘교회>

 

시카고 눈은 유명합니다. 제가 미국에 오던 해인 1979 1월에는 이틀 사이에 21인치 눈이 내려서 온 도시가 마비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폭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4년간 시카고 시장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치 권력을 누렸던 리차드 데일리 시장이 시장 선거에서 밀려나 시카고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인 제인 번 시장을 뽑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은 큰 눈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지난 화요일에 7인치 이상의 눈이 내리더니 이번 주말에도 그만큼의 눈이 쏟아질 것 같다고 하네요. 5년전 2월 첫날 17인치 이상의 눈이 와서 세상이 멈춰버린 때가 있었죠? 그 때를 생각하면서 시카고는 2월도 지나가 봐야 안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실망을 주지 않는 (?!) 시카고의 겨울입니다.

눈이 오면 신나는 것이 아이들인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페북에 아이들이 눈사람 만들고 썰매 타는 사진들이 올라 옵니다. 저희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눈만 오면 동네에 썰매 타는 언덕을 찾아 다니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일에는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하 친교실로 내려가는 작은 비탈길에서 썰매를 타며 더 큰 언덕이 없는 아쉬움을 달래던 모습도 생각 나고요.

날씨가 조금 추워졌다고 보험회사에서 설치해준 경보 장치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서 조금 귀찮은 한주를 보냈습니다. 6년 전인가 온도가 화씨로 마이너스 15 (섭씨—25) 까지 내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내 파이프들이 얼어 터져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보험회사도 그 때 수리비를 대느라 피해가 막심했나 봅니다. 그후에 파이프가 터질 위험이 있는 곳에 온도계를 설치해 놓고 실시간 보고가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2년 전에 온도가 –23oF (–30oC) 로 내려 갔을 때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시스템에 약간 문제가 있었는지 조금 추워졌다 하면 알람이 새벽 3시에도 울리고 해서 조금은 귀찮은 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큰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조금 불편한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하게 보냈습니다.

눈이 많이 왔던 지난 화요일, 눈을 치워주는 분이 오셔서 파킹장의 눈을 치우시는 동안 교회 문 앞의 눈을 삽으로 퍼내면서 아무도 오지 않을텐데 눈은 치워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더군요. 눈만 오면 주일학교 아이들이 눈치우는 삽을 가져다가 한참 놀고서는 교회의 넓은 5에이커 땅 여기저기에 그대로 두곤 해서 늘 삽을 찾아 다니는 것이 일이었는데 ... 이번에는 권사님 한분께서 "목사님, 혼자서 눈 치우지 마세요!" 하시면서 몇년 전에 사 주신 12개의  snow shovel들이 모두 제자리에 얌전히 있는 것을 보고는 좋다는 생각보다는 조금은 쓸쓸한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했던 유명한 시 한 구절이 생각나면서, 이런 엉뚱한 시귀가 하나 떠 올랐습니다. “빼앗긴 일상에도 겨울은 오는가?” 라고요.

그렇게쓸쓸하게눈을 치웠는데 ... 마침 지난 금요일이 한국학교가 봄학기 개강을 하면서 학생들이 필요한 교재및 학습 자료들을 픽업하는 날이라 교회 파킹장이 북적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 치운 일이 결코헛된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스키장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고 하는데 ... 그러고 보니 코로나때도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겨울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2021년도 달력 첫 장을 떼게 되었습니다. 2월 달력을 쳐다보고 있자니 날짜 밑에 쓰여진 글자들이 꽤 되네요. 오는 3일이 입춘이고, 12일은 구정이고, 14일 주일은 발렌타인즈 데이고, 이어서 17일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8일은 얼음이 녹고 눈이 비가 된다는 우수입니다.

교회에서는 이번에 발렌타인즈 날을 맞아서살렌타인이라는 특별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순절을 맞아서 함께 기도하는 일을 또한 준비하고 있고요. 요즈음 베드로 성경 공부에 전보다는 많은 이들이 참석하시는 것을 보면서 봄을 향한 기지개를 조금씩 느끼는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때에도 (겨울은 물론) 봄은 오는 것 같습니다!

 

--202113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72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4월 25일): 단추 / 김응교 file skyvoice 2021.04.26
71 4월에는 file skyvoice 2021.04.19
70 시를 잊은 성도에게: 난파된 교실 / 나희덕 file skyvoice 2021.04.19
69 백신 맞으세요 file skyvoice 2021.04.14
68 시를 잊은 성도에게-아버지의 모자 / 이시영 file skyvoice 2021.04.14
67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4월 4일): 당신의 손/ 강은교 file skyvoice 2021.04.05
66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3월 28일): 중과부적/ 김사인 file skyvoice 2021.04.05
65 아틀란타! file skyvoice 2021.03.25
64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3월 21일): 번짐 / 장석남 file skyvoice 2021.03.22
63 부지런한 봄 file skyvoice 2021.03.15
62 손태환 목사의 시를 잊은 성도에게: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이준관 file skyvoice 2021.03.15
61 위장된 축복 file skyvoice 2021.03.08
60 손태환 목사의 시를 잊은 성도에게: 파꽃 / 이채민 file skyvoice 2021.03.08
59 기다림 file skyvoice 2021.03.03
58 손태환 목사의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2월 28일): “참회록” (윤동주) file skyvoice 2021.03.03
57 손태환 목사의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2월 21일): 눈 / 김수영 file skyvoice 2021.02.23
56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2월 14일): 천장호에서 / 나희덕 file skyvoice 2021.02.16
55 병실에서 1 file skyvoice 2021.02.10
» 시카고 겨울연가 file skyvoice 2021.02.02
53 손태환 목사의 시를 잊은 성도에게 (2021년 1월 31일):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file skyvoice 2021.02.02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