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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_눈오는날.jpg

 

 

 

< 목사 / 두란노 침례교회>

 

 

안녕하세요, 형제님.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네요. 월요일 아침엔 눈도 찔끔 내리다 말았습니다. 올해가 시카고 역사상 8번째로 눈이 늦게 내린 해라고 방송에서 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상대적입니다. 겨울이 늦게 오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기쁨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실망일테니 말입니다. 예를 들면 겨울 추위에 대책이 없는 홈리스들에겐 약간의 위안이 겁니다. 하지만 겨울 용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에겐 겨울답지 않은 겨울은 투정의 이유가 겁니다. 상대적인 것들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절대적인 진리로 운영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동시에 라는 시선에 묶여 세상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판단함으로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들을 낳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에 나도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난 편지를 때가 추수감사절 기간이라 원래 의도했던 축복의 이야기를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예배의 자유를 위해 미국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런데 깊이 생각하다 보니 청교도들의 영적 모험이 교회의 축복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형제님, 이런 질문을 던져볼까요? 청교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미국 땅으로 와야 했을까요? 나라가 명령하는대로 남들처럼 그렇게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 고향을 떠나도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성경대로 예배드릴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과연 그들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청교도들의 생각이 정말로 그랬다면, 예배를 생명 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이유는 뭘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형제님, 우리는 다시 구약의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활약하던 시기로 말입니다. 지점에 도착해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200만명이 넘는 광대한 민족이 몸은 고생하지만 그래도 숙식은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땅을 떠나 아무 준비도 없이 그것도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나간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무계획과 무지가 극에 달해보이는 사건에 하나님을 대입하는 순간 모든 궁금증은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겁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누리는 축복은 지난 편지에서 이미 말씀드린 있습니다. 형제님, 그분이 지닌 성품 때문이라고 말씀드린 기억나시죠? 그래도 잠간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을 가장 베스트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란 없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심으로 우리들을 돕고 계시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죽게하실 정도로 사랑이 무한한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고 계시니 우리는 평강을 누릴 있는 겁니다. 이처럼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선 의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당신이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모세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막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만들게 해서 6 남짓한 지성소에 두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기 위해 6평밖에 안되는 답답한 공간, 그것도 창문도 없어서 깜깜한 공간에 임하셨던 겁니다. 실제로 성막이 완성되었을 , 하나님은 구름과 같은 영광으로 성막에 가득 임하셨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해 성막을 통해 임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으로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하시며 돌봐주신 하나님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 광야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없었습니다. 법궤가 놓인 지성소는 휘장에 가려져 있었고, 성막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제사장이 중간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대제사장 조차도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일년에 번만 들어갈 있었습니다. 일년에 있는 대속죄일에만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그것도 들어가기 전에 향을 잔뜩 피워 연기 때문에 법궤를 없도록 만들어 놓고서야 들어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거룩하고 영화로운 이름을 함부로 부를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름 대신 아도나이, 주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여호와의 이름이 등장하면 주라고 바꿔 읽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계신 분이셨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는 분이셨던 겁니다.

 

이제 신약의 시대로 건너와 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 가장 먼저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아래로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60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가르고 있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께로 나갈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겁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까지 밖에 존재하던 성전은 사라지고,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직접 모시는 성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 은혜 시대의 하나님 자녀들은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있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있게 겁니다. 구약 시대와 비교할 , 하나님과의 관계가 훨씬 가까워진 겁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바는 우리 말로 아빠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상상도 없었던 호칭이 우리에겐 가능해진 겁니다.                      

 

예배는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역입니다. 하지만 사역이라는 무거운 언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배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며 직접 만나 교제할 있는 기쁨과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가득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예배의 자리에 직접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나는데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신령과 진정의 태도만 가지고 예배에 임하면 그분을 마음껏 만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여는 축제의 자리라고 표현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제, 이건 믿는 자만 누릴 있는 축복인 겁니다.

형제님도 축제의 자리에 초대되셨으니, 예배를 통해 마음껏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무한한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다음 편지를 드릴 때까지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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