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품꾼들.jpg

 

 

                                                

 <김 신>

 

 202012일에 나는 성경이 나를 읽은 경험을 이렇게 시작했다:       

   

      인간이 획을 그어 놓은 , 2019년이 지나갔다. 2019년에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손길이 멀게만 느껴져서 많이 힘들었다. 지금 땅에서 살아가는 나인데, ……하나님은 높고 높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기만 하신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없어 주기도문의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부분은 건성 건성 넘어가곤 했다.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미국 사회를 보며 괴로웠고, 모든 것에 무덤덤하고 무기력해지는 나와

      주위를 보며 낙담의 시간이 길어져 갔다.

  

그런데, 어느새 202011월이 왔고 어느덧 추수감사절도 오니, 감사의 계절이다. 20201월말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흘동안 형제들과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돌아와 3월 초의 세계기도일 예배 준비에 올인하는 때에  검은 구름으로 시작된 코로나 19’. 어렵사리 세계기도일 예배를 드린 직후에 내려진 주지사의 집콕 명령, 어느새 9개월전 일이다. 모든 일상이 ‘COVID-19 (코로나19)’ 에게 차압당해, 나와 주위의 모든 사고와 생활이 펜데믹 프리즘만을 통해 이뤄졌다. 이런 일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나도, 다들 겪는 코로나 bluered앓이를 하며, 하나님과 맞장뜨는 기도도  참 많이도 했고, 말씀을, 특히 창세기와 사도행전, 그 후엔 공관복음서들을 그야말로 붙들고 늘어졌다.  

 

2020년 추수감사절을 맞아, 이제 나는 코로나19 펜데믹이 있었기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었고, 더 깊은 감사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2020년 펜데믹의 한가운데에서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 된 여정을 같이 나누고 싶다.

 

3월 중순부터 뉴욕 시의 펜데믹 확산이 엄청난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일리노이는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라며 안도하던 중 맨하튼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와 씨름하는 의사 조카로부터 기도를 요청하는  문자 메세지가 왔다.  그리고, “오늘 사망자 몇 명이라는 뉴스가 아주 잘 아는 친지의 사망 소식으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내 마음의 고통은 커져 갔고, 나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들의 죽음에 내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절절하게 체험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픔을 겪는 이들과 마음과 물질을 나누면서 감사가 넘쳤다. 솔직히, 70평생 처음해본 경험이었다.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창세기를 끝내고 (?) 사도행전을 묵상했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말씀이 어찌 그리 선명하게 나를 사로잡던지 마치 처음 읽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본다:  사도행전 3 1-10절에는, 잘 아는 대로, 오후3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 곁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일이 나온다. 첫 번째 질문은, “베드로와 요한은 그날 처음으로 이 걸인을 보았던 것인가?” 이다. 분명 두 제자 그전에도 수없이 기도하러 올라갔을 것이고, 그 앉은뱅이도 허구 헌 날 그곳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을텐데아니면, 두 제자기 그날 전에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걸하는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애써 외면하며 지나쳤던 것일까?  어찌되었던 간에, 무엇이 두 제자를 그 날에는 여느 날과 다르게 행동하게 하였을까?  답은 분명하다. 두 제자가 성령을 받았기에, 그 걸인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고, 손을 내밀어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고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일 터.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다고 하니, 이 사람 생전 처음으로 성전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의 감격에 동참하면서 두 제자는 얼마나 감사했을까? 이런 상상을 하니 내 자신이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그러다가, 두 제자는 앉은뱅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일말의 두려움이 없었을까? 질문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사도행전 51-11절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였기에 거짓말했기에--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설명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다. 아무리 삼천 명이나 더해졌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시작된 공동체인데, 한 명의 신도가 아주 소중하였을텐데, (성령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니, 무언가 다른 말씀을 하시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런 질문에, 내 나름대로, 사도행전 242절과 432-35절에서 실마리를 잡고 있던 중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태복음 201-16절에서 하늘 나라를 비유한 포도원의 품꾼들이야기에서 예전과는 다른 묵상을 하게 되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얼마전까지도 시카고 로렌스와 링컨길가에 있었던 일용직 노동시장이었다. --*사족으로, 우리집 부엌 리모델링을 맡은 한인이 매번 다른 히스패닉 일꾼들을 데려오기에 물어보았다가 이 노동시장을 알게 되었다. 여하튼, 포도원 주인은 분명 이른 아침에 그날 포도원에 필요한 일꾼을 다 들여보냈을 터인데 왜 또 9시에, 12시에, 오후 3시에, 그리고 문닫기 직전인 5시에 나가서 일꾼들을 데리고 오는가? 포도원 주인의 동기는 분명 경제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야 물론, 모든 이들을 살리려는 하나님 마음이었겠지. 그래도 질문이 생긴다. 첫째, 왜 맨 나중 온 일꾼들부터 품삯을 주라 하셨나? 그것도 모든 일꾼들이 보는 앞에서. 한 데나리온 품삯을 악속 받고 온종일 수고한 이들에게 먼저 품삯을 주어 집에 가서 쉬게 하지 않고? 무언가 알려주실 포인트가 있겠지?

 

둘째, 이른 아침에 들여보낸 일꾼들과는 한 데나리온 품삯을 정했는데, 그 후에는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다고 했다. ‘일한 만큼의 품삯은 얼마? 품삯을 계산할 때 보니 한(1) 데나리온 품삯이 일한 만큼 품삯인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한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약속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었나? 달리 말하면, 11, 12절의 이른 새벽부터 일한 품꾼들의 격렬한 불만 토로가 수긍이 되었다. 백배 양보해서,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인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것이라고 끝내기에는 영 찜찜하고, 흡족치가 않다.

 

그래서, 나는 격렬한 불만을 토한 이른 새벽부터 일했던 일꾼들의 마음 속을 좀 더 들여다 보았다. 이들은 약속한 품삯을 받았는데도, “It’s not fair.”라며 들이댔을까? 한 데나리온을 가지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데도, 나보다 일 적게 한 일꾼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고 나니 나에게 약속한 한 데나리온은 아니올시다라 싶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이들이 주인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루 종일 일한 내가 한 데나리온이면 나중 온 이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에서 얼마를 떼어내 나에게 더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일한 시간에 따라 품삯이 정해져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한 데나리온이면 나중 온 이들은 일한 시간에 따라 품삯이 한 데나리온의 몇 분의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면, 한 데나리온도 못 받은 일꾼들의 가족은 하루 입에 풀칠도 힘들 텐데….  하다가 눈 앞이 번쩍 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배려 (compassion)가 없구나 싶었다. 이 하늘 나라 비유의 핵심이 이것이 아닌가? 꼭 내 모습이네! Have mercy on me, O God!

 

한 꺼풀 더 들어가니, 이른 새벽에 픽업된 일꾼들의 내면에 자신이 일을 잘 해서, 혹은 잘 할 것 같아 보여서 선택되었다는 자부심 (?)이 도사리고 있는 듯 했다. , 그들은 내가 일찍 선택되어 포도원에 들여보내진 것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내 실력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들이 자신이 일찍 선택된 것이 온전히 포도원 주인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고 쩔쩔매는 자신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참 후에야 한 데나리온 일거리가 주어져 !’ 하게 된 이들과 함께 기뻐할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움에 나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COVID- 19 펜데믹이 기승을 부리는 2020년 추수감사절에 나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20201122

               

*그림 설명: "포도원의 품꾼들" (렘브란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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