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목사 / 포항제일교회>
민주 사회에서 선거는 치유와 통합의 과정입니다. 사회의 모든 어젠다들이 다루어지고 서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여론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의제 간에 우선순위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정치의 공간에서 한 쪽 말만 맞는 경우는 잘 없기에 선거의 과정은 여론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도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갈등을 녹여내는 과정이고, 심지어 축제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최종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승패가 분명해지는 시점에 패배한 후보가 승복 연설을 하고 이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당선자가 수락 연설을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 선거를 경험하고 투표하고, 정치 연설도 많이 들었지만, 앨 고어가 부시의 승리를 인정하는 concession speech는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플로리다의 석연치 않는 개표 과정으로 미국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라는 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형편없는 설계가 아닌가 하는 불안을 그 연설이 일거에 잠재웠습니다. 지지자들조차도 아쉬우면서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승복했습니다. '앨 고어가 캠페인 때 저렇게 연설했더라면 승리했을텐데!"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연설이었습니다. 허술한 시스템이지만 성숙한 태도와 문화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미국이 지금은 어디로 갔나 싶습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던, 폭력 행위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여, 상점들은 문을 다 가로막고 있다 합니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사사건건 격하게 대립하는 것은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기도하는데, 이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