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목사
우한지역의 교민들은 "강도 만난 이웃"입니다. 모른 체하고 지나치거나, 내 알 바 아니라는 냉담한 태도를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이 당한 곤란의 크기를 보며, 내가 혹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의 크기를 과장하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우한폐렴" 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것도 그러한 배려의 일환일 것입니다. 이 단어 자체가 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산, 진천 주민들도 우한 교민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곤란한 상황을 만나 당황하고 있는 우리 이웃임에 틀림없습니다. 길이 열리길 바라지만, 이 곳 주민들을 비난하는 것 또한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곳이 아니어도, 대한민국 어디가 선택되었어도 격한 반응이 나왔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 그 분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럴 때일 수록 교회와 성도들이 중심을 잡고, 차분하게 건강한 여론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제는 쉽지만 포용은 어렵습니다. 판단은 쉽지만 이해와 배려는 힘듭니다. 그러나 판단하고 배제하는 쉬운 길만 택한다면, 그 메마른 세상에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엄청날 것입니다.
몸이 허약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이 되듯이, 상호이해와 신뢰, 배려의 기초체력이 허약한 사회는 조그만 재난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 또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데,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이 사회가 어려움을 해결해가는 기초체력을 기르는 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썼던 글 다시 꺼내어 봅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풍요와 안정을 구가했던 황금시대를 꼽으라면, 많은 역사가들이 로마의 5 현제 시대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자락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는 엄청난 전염병에 시달린 음산한 시기였다.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 전염병이 15년이나 계속되는 동안, 이 병으로 사망한 인구를 제국 전체의 4분의 1 혹은 심지어 3 분의 1 까지로도 추산되는 것을 보면, 그 15 년을 사람들이 어찌 살아내었을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적 관계는 어떻게 변해갔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자신도 비엔나에서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염병이 로마의 인구구성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한 일이다 (W. Scheidel, 2002).
이 재난을 그리스도교의 제국의 대표 종교로서의 성장과 연결시켜 보는 시도들이 있다 . 그리스도교의 발흥은 세계사의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주후 40 년에 전 세계를 통틀어 1,000 을 넘지 않던 그리스도인들이 300 년에는 5백만 에서 7 백 5 십만 정도로 불어 났던 것으로 추산된다. 황제 한 명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해 준 것이 아니라, 이미 4 세기 초반에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제국의 대세가 되어 있었으며, 황제는 그 현실을 수용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더 맞을 것이다.
역사학자W. McNeil (1976)은 전염병의 공포가 환자들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게 했는데, 유일하게 그리스도인들 만큼은 극진히 아픈 이들을 돌보았다는 기록들에 주목한다. 전염에 대한 공포로 상호의심과 기피, 혐오의 생지옥을 겪고 있는 세계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보다 더 큰 사랑으로 서로를 극진히 돌보았다는 것이다. 아무 대책없이 방치된 사람들에 비하면, 특별한 치료제가 없이 기본적인 간호와 돌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회복률은 괄목할 만하게 높아진다는 의학적 데이터가 동원된다.
주후 260 년 경에 다시 한 번 거대한 전염병이 제국을 덮친다. 주위를 둘러 보면, 가족 중에 아무도 죽지 않은 집 찾기가 힘들고, 한 명만 사망한 집은 다행이라 생각한다는 말까지 낳은 재난이었다. 두 번의 재난을 겪고 난 후에, 제국의 인구가 현저하게 줄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의 현저하게 높은 생존률이 제국 전체의 인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다수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신흥종교들이 대개 사회의 위기, 기존 사회의 정서적, 물리적, 지적 자원들이 대응하지 못하는 위기를 대응할 때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사회학의 이론들과 일치한다.
그리스도교인의 공동체는 현대적 복지국가의 모형 (miniature)이었다고 하는 주장까지 있다.
사회학자R. Stark (1997)은 섬세한 설명을 추가한다. 종교의 전파에 기존의 인간관계의 망 (network) 이 촉진제가 되기도 하고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는 기존의 사회 그룹들 안에서의 가족, 친지, 후원자 등의 관계망을 통해서 전파되기도 했고, 또한 기존의 사회 조직들이 그리스도교 전파의 큰 장애가 되기도 했다. 의심스러운 새로운 종교에의 가담은 주위 사람들의 만류 혹은 핍박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나 모임과는 달리 전적인 헌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 태도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 새 종교에 가입한 이들은 기존의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벧전 4:3-4)
그런데 전염병들은 기존의 사회조직을 붕괴시켜 버렸다. 많은 멤버들이 사망한 것 뿐 아니다. 인생의 위기가 다가 올 때 그런 관계들이 별 도움이 못 됨이, 어깨를 맞대고 술 잔을 부딧치면서 “우리가 남이가!” 외치지만, 막상 병에 걸리면 서로를 의심하고 밀어내기에 바쁠 뿐인, 그 관계의 한계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인생? 누구나 외롭다. 안전한 곳? 세상에 없다.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던 “최첨단”의 병원이 최악의 감염통로가 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무엇을 믿고 살 것인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공동체가 적어도 이 땅위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임을 삶으로 증명해 내었다.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누구도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 사람들이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다 (롬 1장). 이는 삶의 어느 시점에 믿음이라는 것을 소유하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설 때에 입장권으로 써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뜻이 아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한 자락을 누리며, 보여 주며 살 수 있게 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말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 보면,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아래는 주후 260 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의 편지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전쟁과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들을 이교도들과 우리가 함께 당했으나,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재난들은 우리만 겪었습니다. 우리는 또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일들의 결과를 경험했으며, 여러 가지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만 주신 평화 속에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모두 잠시 여유를 얻게 되었을 때 페스트의 공격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두렵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며, 그들의 역사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모든 희망을 초월하는 재난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그러한 특성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하는 수업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이교도들을 크게 공격했으나, 결코 우리에게 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여기서 출애굽기의 유월절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우리 형제들은 넘치도록 큰 사랑과 형제애를 발휘하여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끊임없이 병자를 돌아 보았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았으며, 그들과 함께 지극한 기쁨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이웃에게서 그 병에 전염되었으면서도 자원하여 환자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 줌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자초하였습니다. 많은 형제들이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해 주고는 자기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으며, 전에는 하나의 공치사이거나 형식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흔해빠진 표현을 실증했습니다. 그들을 실제로 자신의 죽음 속에서 만물의 찌끼가 되었습니다.
우리 형제들 중에 가장 선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장로도 있었고, 집사도 있었으며, 크게 칭찬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경건함과 열렬한 신앙을 수반한 죽음은 순교에 조금도 못지 않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도의 시신을 맨손으로 품에 안아다가 눈을 깨끗이 해주고 입을 닫아 주었으며, 그들을 어깨에 지고 가서 사지를 가다듬고 포옹하였고, 그들을 단정이 씻기고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곧 자기 자신도 같은 의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앞서간 사람들의 뒤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이와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 앓기 시작한 사람들을 쫓아냈으며 사랑하는 친구들도 멀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을 길에 내다 버렸고, 죽은 사람을 매장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방하고 조심해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세비우스, 교회사. 7.22)
P. S.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전염병 퇴치의 최전선에서 싸우시는 이 땅의 모든 의료인들께 사랑과 존경,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