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에서가 일찍 돌아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만일’은 없습니다. 30절에는 “마치매”, “나가자”, “돌아온지라”,
영어성경을 보니 “FINISHED, LEFT, CAME.”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끝나고 버스 떠난 다음에 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염소고기를 들고 염소털로 꾸미고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나아가 복을 다 받고 난 다음 에서가 돌아온 것입니다.
뒤늦게 돌아온 에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버지여, 일어나사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깜짝 놀란 아버지 이삭이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Who are you?” 아들에게 ‘너는 누구냐’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에서가
대답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말합니다.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가 그 말을 듣고 방성대곡합니다. 영어성경을 보니 ”he burst out with a loud and bitter cry“,
”큰 소리로 비참하게 우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쓰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러나 이삭은 대답합니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고,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는
더욱 애통하고 처절하게 울부짖습니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남은 복, 찌꺼기 복이라도
빌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대답합니다.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떨쳐 버리리라.“ 다 끝난 다음에 애통하며 울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에서는 장자권을 버렸습니다. 잠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하여 바꾸었습니다. 이는
믿음을 세상의 복으로 바꾼 것이요, 영원한 생명 보다는 당장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하다고 바꾼
것입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다 끝난 다음에 달려와서 애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아무리 에서를 사랑한다 해도, 에서를 위하여 무엇을 해 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애원해도 그 때는 하나님께서 해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은 2등이 없습니다. 미루는 자,
뒤늦게 오는 자에게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이것이 시급한 일입니다.
뒤늦게 애통하며 몸부림쳐봐야 구원의 문이 닫히고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나중에, 천천히, 이 다음에가 없단 말입니다. 지금 믿어야 하고 지금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