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씨앗-선교 비사: 한알의 밀알

by 관리자 posted Nov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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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의밀알 (220x229).jpg

 

<이남 권사 / 뉴비젼 교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지금부터 100년 전 한 젊은 선교사 부부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고, 아들의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으로 우광복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 로저라는 두 딸을 낳습니다.

 

1906 2월 논산지방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다가 상여 집에서 비를 피해 잠시 쉬게 되었는데, 바로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을 장례하고 그 장례용품을 보관하는 곳이여서 선교사님이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졸지에 선교사 사모님은 과부가 되어 본국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놀라운 사실은 2년 후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에 돌아와 큰 교회들을 세우는데 기여를 하고 47년 간 사역하였습니다.  사역 중에 두 딸이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고 우광복 여동생 올리브가 11살에 죽어서 영명동산에 묻힙니다.

우광복은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오고 미국으로 갑니다그러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때가 바로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하지 장군이 조선 총독이 되어 다스릴 때 였습니다. 그때 영어와 한국말을 능통하게 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선교사 아들 우광복입니다. 우광복이 하지의 참모가 되어 정부 수립에 관여합니다.

그때 하지가 우광복에게  자네가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인제 50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우광복은 어머니와 상의하여, 어머니가 추천해준 50명중 48명을 기독교인으로 소개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수립할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인 문교부장관을 두어 미신 타파를 시작했고. 국방부장관이 기독교인이 되어 군대 안에 군목 토대를 마련하여 하나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헌국회의 국회의원 대다수가 기독교인들 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제헌국회 속기록 첫 장을 열면 기도로 국회를 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8 5 30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윤영 목사에게 기도로 국회를 열 것을 주문합니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 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 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 (伸寃) 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 하나이다.”

 

이때는 기독교인이 전체 한국 국민 중5퍼센트도 안 되는 때였습니다그런데 웰리엄 사모님이 추천해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친 결과 10년만에 500만이 되고, 20년 만에 1.000만 성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적이 어떻게 가능 했습니까미 군정시절 우광복이 추천한 50명부터 시작 했습니다. 우광복에게 50명을 누가 추천 했습니까? 바로 이억 만리 타국에서 남편과 두 딸을 잃어 버렸는데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우광복의 어머니, 사모님 때문입니다.


우광복은 1994 87세 일기로 소천했는데 유언하기를 내 동생 올리브! 11살에 죽은 내 동생 올리브! 공주 영면동산에 묻혀 있는 내 동생, 올리브 옆에 나를 묻어 달라고 유언 했습니다. 아마도 한평생 동안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죽은 동생이 가슴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지금 우광복의 묘가 동생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와 같은 선교사의 헌신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참 그리스도를 영접 하였기에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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