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11월

by skyvoice posted Nov 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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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jpg

 

<김명렬 / 문필가>

 

한해가 기울어져 가는 11. 시골의 논두렁에는 아직도 추수한 나락의 낱알들이 퇴락하는 가을빛을 업고 함께 뒹굴고, 감나무에는 가을의 서늘한 밤에 내리는 된서리를 맞고 홍시로 변해 버린 몇 안되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들이 붉게 단장한 얼굴로 우듬지에 매달려 있고, 개울가에는 아직도 여름 속에 미역감던 아이들과 놀고 싶은 밤게들이 돌 틈 바귀에서 불거진 두 눈알을 껌벅 대며 얼굴을 삐죽이 내미

11월달은 아직도 금년이 가지 않은 마지막 달에서 앞에 서있는 달이기도 하다. 빨랫줄에 쪼르르 줄지어 앉아있는 참새의 등 위로 더욱 더 시렵도록 파랗게 비치는 하늘은 노랗게 여문 배추 고갱이 속에 아직도 서릿발의 입김이 서려 있는 잔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듯 하다.

기운 햇살이 온기를 잃어가듯 중심에서 밀려난 만큼 쓸쓸해 지는 시간들을 인정하며 이제껏 한 해동안 살아오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수납하며 시린 계절을 인내로 견뎌 내야 한다. 해놓은 것도 없고 이뤄놓은 것도 없이 지나온 열 달이었다고 미리 비감에 젖을 필요는 없다. 11월은 아직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기 때문이다. 7, 8 이글거리는 태양볕처럼 다시금 뜨거워져 피어 오르진 못한다  하더라도 히든 카드와 같은 유용한 날들이 남아 있다. 아직은 다시 해보고 일으켜볼 수 있는 반전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큰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멋진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열에 들떠서 하지 못하고 지내온 날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달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이자.

12월의 달력 한 장의 무게는 지나온 열 한 달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말도 있다. 11월달에 어울리는 나만의 내생의 표정을 찾아 보도록 하자.

11월달은 웬지 서글퍼지고 마음이 공허로운 감을 안겨주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때로는 장미꽃같은 만남도 있고 단풍잎같은 이별도 있다. 힘들고 고달프고 공허로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

조금은 나 자신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 하는 것, 거기에 진실과 사람다움이 있는 것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누구에게나 가을과 11월달은 온다는 사실이다. 가을에 내리는 서리는 초록의 목숨들에게 공평하게 내리며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를 수는 있지만 모든 잎사귀는 조락의 운명만은 결코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하루 하루에 목을 매고 살아갈까? 타인을 속이고 끝내는 자신마저 속이면서 허위의 몸짓으로 살려고하는지?........ 좀더 겸허히 고개를 숙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가을이 되면 11월이 오고 한해가 기운다. 햇살도 기운다. 기울지 못하는 나만 위태롭다. 가을은 물드는 계절이다.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초록의 숲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고 먹구름이 오가던 하늘도 점점 높아져 눈부신 새털구름 너머 쪽빛으로 물든다. 푸른 감은 노을빛으로 물들고 대추알도 하루가 다르게 붉어진다. 일찌감치 선홍빛으로 물든 단풍나무 가로수도 노랗게 물들어 하나, 이파리를 내려 놓는다. 분홍, 빨강, 흰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코스모스 꽃잎을 따라다보면 내 마음도 가을색으로 물들여져 있다. 물드는 일은 스미는 일이다.

붉은빛의 홍화염색을 한 천을 쪽물에 담그면 신비의 보라색이 되는 것처럼 물드는 일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스미어 새로운 색으로 탄생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결국은 스스로 물드는 일이며 스미어서 다른 색으로 발현되는 일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물들고 누군가 내게 스미어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스스로의 색을  고집하고는 자신을 물들일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스미지 않고는 새로운 색으로 변화할 수 없다. 물든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에게 허락하는 일이요, 스민다는 것은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가을 나를 물들이는 사람이여, 나도 당신에게 스미어 새로운 우리로 태어나고 싶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물들여지고 스미어지기 전에 세상에는 밉고 싫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싫어지거나 미워질 때 우리는 그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데에 몰두할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안섶을 살펴보고 자기 안에 깃들어 있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 노력을 해야 한다. 맘에 들지않는 부분을 스스로 인식하고 고쳐 나간다면 세상엔 훨씬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여 책임을 전가시키고 스스로 잘못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로 잡지 않고 비난하고 혐오한다면 세상은 미운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수많은 모습들을 조금씩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굳이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만 있기를 바라지는 말자겨우 알아주는 몇 사람만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11월달은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상(我想) 계절이기도 하다. 세상사 모든 것을 생각하며 나 자신도 되돌아 보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든다 11월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