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례 / 아동 문학가> 아까
아침 8시 -- L.A.시간으로는 새벽 5시였던가 보다--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밤
나와 둘이서 전화통에 대고 실컷 울면서 “이제 그만 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자”는 형제들의 의견을 모아 단념을 했었지만 설마 이렇듯
빨리 시간이 흘러 갔나 싶어 전화에 뜬 동생의 이름을 보자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눈을 감았니? 언니가 벌써?” 나는
다짜고짜 마음 속에서 울부짖듯 “죽었니?” “숨을 거두셨니?” 라는 말 대신에 그런 애매모호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동생은 “응,
눈을 감았지만 아직 숨은 쉬고 있어” 라는 대답. 동문 서답이었지만 나의 뛰던
가슴은 조금 가라 앉았다. “몰핀 맞고 산소 호홉해서 얼굴 색도 밝고 깨끗해서 주름살도 안 보이고 평화스럽게 자고 있어.” 철새처럼
겨울만 L.A. 에서 지내고 있는 동생
내외는 둘 다 퇴직한 의사여서 나보다는 늘 몇배 언니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이제
여든을 겨우 한 두 해 넘긴 우리 여섯 남매 중 둘째 언니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다. 둘째 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엄마나 다름 없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부모님처럼 섬겨야 하는 훌륭한 언니였으나 언니의 성품이 워낙 유별나서 자식처럼 사랑한다는 동생들이지만 가까이 하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살아왔다.
언니는
기억력 좋고 머리도 좋았으나 공부를 싫어해서 대학엘 가지 않았다. 때마침6.25가 터지는 바람에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구실이 생겼었다. 그대신에 공부 밖에 모르는
동생들 4명을 위해 신바람 나서 돈 버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그렇게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여 학사 1명 (제일 막내), 석사 1명 (셋째 인니), 의사 1명 (넷째), 그리고 박사 1명 (막내 외아들)들을 만들어 놓고 마치 시골에서 땅 팔아 자식 잘 키워 놓은 부모처럼 자랑스러워
했다. 첫째 언니는 전쟁 한 해 전에 시집가서 잘 살고 있어 때로는 고생하는 형제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고
기억된다. 지난
1월 8일에 우리 내외가 언니한테 병 문안 갔을 때만 해도 언니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 하면서 말을 좀 더듬기는 했으나 우리가 가지고 간
조카들 사진이랑 일일이 다 알아보고 옛날 생각까지 떠올리며 미소 짓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언니는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로 옮겨지고, 진찰한 결과 가벼운 스트로크까지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병세가 악화 되기는 했으나 쉽사리 세상을 뜰 것 같지는 않아서
우리는 예정대로 3주 만에 집으로 오고 말았다. 돌아 오는 내내 비행기 안에서 나는 언니에게 죄인이었다. 무엇 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언니를 하나님 앞에 세워주지 못한 것이었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순간 까지 기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진심으로 뉘우쳤다. 다행히
그동안 나 대신 우리 언니를 보살펴 주었던 시조카 며느리인 슬기 엄마의 집이 언니가 있는 병원에서 가까워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슬기 엄마는 얼마 안 있으면 목사 안수를 받을,
믿음 좋아 내게는 보배 같은 식구다. 슬기 엄마는 또한 우리 언니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더 정성을 다해 기회 있을 때 마다 한 영혼을 구하고자 은근히 전도를 했다.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세례받지 않았어도 구원 받는다”고 우리 언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 주고 확답을 받았단다. 언니는 처음에는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곤 했으나 크리스마스 무렵부터는 예수님 말만 나오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알았어.. 알았다니까” 했었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게 자꾸 듣고 싶어 언니에게 몇 번이고 바보처럼 묻곤 했다. 내 친구 강 권사는 하나님께서 우리 언니의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슬기 엄마를 천사로 보내신거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천사 같은 슬기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 했다. “그날 임종하시는 마지막 날 의사 동생분도 집에 가고 아무도 없는데 저는 오후 4시가 넘어 혼자
두고 갈수가 없어 옆에 있으며 계속 그치지 않고 예수님 과 십자가와 부활 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그러고
언니는 5시간 후 오후 9시 10분에 숨을 거두셨다고 했다.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쉬고 내쉬고 나서 아주 평화스럽게 하늘 나라에 가셨다고 나에게 전해주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언니는 예수님을 붙들고 있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리고
지금도 살아 계신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우리 언니를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셔서 언니는 천국에 데려가시고 그의 영혼을 영원히 소생시켜 주셨다고 나는
마음 속 깊이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