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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화분.jpg


<김명렬 / 문필가>

 

노랗고 하얗게 피어난 국화꽃을 보면서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생각났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 시는 불교의 윤회설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고 알려졌으며, () 속의 소쩍새는 번뇌와 비탄을 상징한 것이고 먹구름도 불안과 고통, 무서리는 시련과 인내를 나타낸 것이다

묵내뢰(默內雷)’ 말이 있다. ‘겉으론 침묵을 지키지만 속으론 우뢰와 같다 말이다.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사고(思考)하는 동적(動的)인 형태의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가 겉으론 웃음 짓고 밝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으로 열 번의 울음을 삼켜야 한다는 사실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울음을 삼키고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 그것을 느꼈고 소쩍새와 천둥이 몸부림친 모습으로 국화의 묵내뢰를 표형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사람 사는 일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들 천둥번개 치는 것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일과 관계 속에서는 언제나 갈등의 연속이다. 자기 자신과도 싸우고 친구와, 동료와,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도 부부 간에 갈등과 벼락을 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지난 후에라야 꽃이 피고 마침내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안다면 회피, 외면, 무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넘어가며 빚어져야 한다.

오늘도 내 마음 속의 천둥을 다스려 본다. 내가 피우고 싶고 피워야 하고, 피울 한 송이 국화꽃을 위해서.......다른 꽃들은 봄과 여름을 구가하나, 국화는 가을에 늦게까지 피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그윽한 향기로 우리의 마음도 정화시켜 준다.

만자추풍락(萬紫秋風樂)이요, 일황구월향(黃花九月香)’이라. ‘모든 꽃들은 봄바람을 즐거워 하지만, 한 가지 누런 국화는 구월 향기로다.’

다른 꽃들은 , 여름에 피고 지는데, 유독 국화는 늦가을에 피어 추위를 이기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 마치 선비가 어려운 시련을 참으면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에 비유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백화(百花) 다 진다고 해도 가을에 피어 서리를 두려워 하지 않는 꽃, ‘오상능추(傲霜陵秋)’라 하여 옛부터 선비의 기개처럼 존경받고 존중해온 .

국화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꽃으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그러나 국화가 가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가을 꽃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여름에 피는 하국(夏菊)과 겨울에 피는 동국(冬菊)도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꽃이 국화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장례식이나 산소에 흰 국화꽃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전 한국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용된 국화가 자그마치10톤 가량이 넘는다고 하니 숫자만 하여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흰 국화는 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개량종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니 사용한 기간도 오래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화의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재배하였던 꽃으로, 백제의 왕인은 일본으로 가면서 국화를 가져가 일본 국화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꽃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옛날 당나라 태종이 신라 선덕여왕에게 모란꽃씨를 보내면서 씨를 심으면 그림과 같은 꽃이 핀다며 모란꽃 그림까지 보냈다. 그림을 본  선덕여왕은 은 아름다운데 향기가 없구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부왕이 꽃도 안 보고 어떻게 향기가 없는지 아느냐?”고 묻자 꽃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지 않습니까?” 반문했는데, 나중에 꽃이 핀 모란은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는 삼국사기에 기술된 이야기로 선덕여왕의 예지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래 생물학자들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꽃의 향기는 벌을 끌어들이기 위한 향기가 아니라 진딧물같은 해충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흘리는 유독성 물질이다. 그보다 벌들은 꿀을 찾으면 자기 집단만 감지할 수 있는 화학성분을 자기 몸에서 분출시켜 동료들을 유도한다고 한다. 모란은 향기가 아니라 꿀이 없어 벌이 접근

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이 꽃의 향기는 독소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꽃의 향기를 대단히 좋아해 향료의 대부분은 꽃의 향기를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꽃의 아름다움은 향기보다 시각을 통해 비춰지는 현란한 색상과 자태들이다. 아마 자연이 만든 공작품 중에 꽃 이상의 섬세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꽃의 종류는 27만여 가지인데, 한결같이 밝은 색소를 지녀 주위보다 돋보인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벌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이것 역시 잘못된 해석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벌이 세상에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꽃은 피어나 있었다. 벌은 3천만 년 전에 태어났지만 , 가장 오래된 꽃의 화석은 8천만 년 전의 것이다. 또한 벌이 색깔을 볼 수 있다고 하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의식은 없다. 실제로 벌이나 나비는 모란이 아름답고 현란한 꽃이지만 꿀이 없어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일부 동물이나 곤충 중에 공작새나 호랑나비처럼 현란한 색으로 치장돼 있는 것은 짝을 유혹하기 위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이것은 아름다움의 개념을 가진 인간이 그렇게 간주할 뿐이라고 동물학자들은 말한다. 동물들은 사람과 똑같이 공포심을 갖고 있

어도 사람과 똑같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결여돼 있다. 그러고 보면 꽃을 아름답다고 인식해 주는 생명체는 결국 사람들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가을에 국화꽃 향기가 코를 자극하며 은은한 향기 속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국화꽃을 바라보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국화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세한고절(歲寒孤節)’, , ‘추운 겨울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 말이 있는데, 이 모든 뜻은 충성심이 강한 충신, 절개를 지키는 지조 강한 여인을 비유하여 국화나 대나무를 인용하여 옛부터 사용되어온 말이다. 꽃을 보고 어찌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탐화봉첩(貪花蜂諜)’이란 말이 있거니와 꽃을 탐내는 것은 꿀벌뿐만 아니라 무릇 생명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자는 누구든지 국화꽃을 좋아할 것이다.

국화의 특징은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국화는 모든 꽃과 나무들이 서로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봄날에 묵묵히 자란다. 흩날리는 벚꽃과 목련, 철쭉, 백합, 진달래, 개나리들의 아름다움을 시기하지도 않고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봄에 다같이 꽃을 피우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 다른 꽃나무와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에는 묵묵히 계속 자란다. 모든 꽃이 다 지고 나뭇잎도 떨어지며 성장이 멈추면 국화는 그때서야 그 자태를 뽐내며 온갖 색깔의 꽃을 피워낸다.  가을에 피어난 저 아름다운 국화꽃을 보면서 우리도 국화꽃같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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