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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편지_이향신.jpg

 

<이향신 / 청운교회 권사>

 

착한 농부 나의 아버지께


앞마당 잔디밭 사이의 노란 수선화가 피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콩잎이 누렇게 물들고 거둬들인 참깨단이 울타리 밑에 수북히 쌓여가는 가을이예요.

김장 배추의 허리가 통통해져 가고 여리던 열무가 밭고랑에 허연 몸매를 드러내는 무가 되고, 그런 것들이 모두 아버지의 땀과 정성으로 키워온 결실들입니다.

평생을 흙과 더불어 땀 흘려 살아오신 사랑하는 아버지.

내년이면 90세가 되시는데 뒤늦게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으시고, 작년에는 명예 집사님이 되셔서 정말 기쁘고 감사해요.

매일 성경 읽기와 성경공과 숙제를 열심히 하셔서 엄니가 신통하다고 하시잖아요.

어머니 가방과 성경책 넣을 아버지 교회 가방을 사오셔서 어머니는 평생 처음으로 가방 선물을 받았다고 좋아 하셨어요.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명품 가방을 선물 받으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통해 부모님도 예수 믿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며칠 전, 수경이 아빠랑 내려가서 도고에 있는 세계 꽃 식물원 구경과 레일바이크를 타러 갔었지요. 그때 나들이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고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챙겨드리지 못한 게 너무 죄송했습니다.

무엇보다 국화꽃 화분 4개를 사시면서 너무 좋아하시는 걸 보고 꽃을 좋아하시는 걸 다시 알았답니다. 구순이 되신 연세에 꽃을 사시는 멋쟁이 할아버지.

매일 논과 밭에서, 뒷산에서 산천 초목 우거진 곳에서 사시는데 꽃을 사신다는 것을 최서방이 처음엔 이해를 못했대요. 삭막한 도심에 사는 최서방도 여태 꽃 한송이 사지 않았으니 그럴 수 밖에요.

세상에서 제일 착한 농부 울 아버지가 계셔서 정말 감사해요.

함께 식사 기도 할 때 두 손 모으고 순수한 어린이 같은 하나님의 자녀, 나의 아버지,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내년 봄에는 양재동 꽃시장 들러 이쁜 꽃 모종 많이 사다 드릴게요.

 

--깊어가는 가을 밤에 아부지를 무지 좋아하고 사랑하는 둘째딸 향신 드림


착한 농부의 아내 나의 어머니께


며칠전 수경이 아빠랑 시골에 내려갔을 때 목욕을 시켜드리지 못하고 와서 맘이 편치 않네요. 흔들의자 옆 벽에 있는 카렌다 뒷장에 이렇게 큰 글씨로 써놓았지요:

향신이 오면 꼭 목욕하자라고.

엄마와 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그렇게 엄마가 쓰셨잖아요.

막무가내로 목욕하기 싫다 하시다가도 제 손에 이끌려 목욕하시고 대박!” 이라고 이렇게 시원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좋아하셨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그냥 올라왔어요. 그날 어머니께서 많이 무리를 하신 것 같아 목욕까지 하기엔 벅차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세계 꽃 식물원과 레일바이크를 타시느라 고생하셨잖아요. 저희는 어머니께서 레일 바이크는 못타시겠다고 하실 줄 알았어요. 철길을 달리며 덜컹 거려 허리 아프실까봐 우리가 걱정하면

허리도 안 아프고 머리도 시원하고 좋다아

하시며 너무 좋아하셨죠.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을 90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레일 바이크를 탔던 그날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주셔서 고마워요. 어느때고 가고 싶으면 찾아가는 곳, 한밤중에라도 주무시다가도 반기시고 부담없는 곳, 엄마와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 뿐이라고 저희 부부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찾아 뵙습니다.

어디 바람 쐬러 갈까하고 나서다가도 결국 찾아가는 내 고향, 안골. 거긴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엄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기억력도 많이 떨어져 있지만, 엄마가 계셔서 정말 행복해요.

담에 내려갈 때에는 애들이 사용하지 않는 유모차를 가져가야 겠어요. 밀면서 걸으시기도 하고, 힘들 땐 앉으시도록 할게요. 쉬엄 쉬엄 구경하시게요. 지난번 꽃 구경 갈 때 많이 아쉬웠거든요. 지팡이도 마다하시던 엄마였지만, 저는 어떤 모습이든 우리 엄마가 이쁘고 자랑스러워요.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담엔 꼭 시원하게 목욕 시켜 드릴게요. 기다리세요.



--엄니를 무지 좋아하고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둘째딸 향신 올림.

 

·         *우리 청운교회에서 추수감사절 감사편지 쓰는 시간에 썼습니다.

  • ?
    관리자 2014.11.24 13:00

    서울 청운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는 이향신 권사님께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감사 편지를 보내 오셨습니다.

    위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레일바이크 타시는 부모님; 청운교회에 추수감사절 데코로 설치되어 전교인들이 감사편지를 부치는 감사편지 우체통; 아버님께서 원하셔서 사드린 국화 화분; 아버님이 100점 맞은 성경공과 학습지; 교회 가려 교회 버스 기다리시는 어머님의 뒷모습.


    * 하늘소리 필진님이신 수필가 늘샘 최원현 장로님의 부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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