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렬 / 문필가> 가을이 쇠퇴하며 늙어 병들어
가고 있다. 늦가을, 만추의 계절, 가을과 겨울 사이의 계절,
11월달이 속절없이 세월과 시간이라는 수레바퀴를 돌리며 미래라는 앞을 향해 열심히
굴러가고 있다. 이 사색(思索)의 계절에 나의
삶을 조용히 성찰해 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인생은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고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말했다. 확실히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먼
후일에 닥쳐올 죽음을
향해 열심히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즐거운
삶과 행복한 삶을 위해 웰빙
(Well-Being=잘 사는것)의 붐이 한창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웰빙을 넘어 웰다잉
(Well-dying)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한다. 잘사는 것만큼 잘 죽자는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잘
죽는 것일까? 우리들 주위에서 보거나 매스컴을 통하여 볼
것 같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세상을 떠난다. 최근에 몇
주사이에도 내가
아는 지인 두
사람이 저
세상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갔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우리 모두는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죽는다. 죽음이란 두 글자를 맞기까지 순서가 앞서고 뒤서고가 있을
뿐이지 몇
십 년이란 단위를 울타리 삼아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죽는다. ‘죽음’이란 두 글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두려워
하고 생각하기를
꺼려 한다. 죽음은 한 마디로 미지의
세계이므로 내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들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어느
사람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가족들이 덜 상심하도록 배려하고 자신이 살아서 쌓아 두었던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