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길원의 시사칼럼-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죽음을 보고

by skyvoice posted Apr 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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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과 영웅을 창조하는 미국문화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죽음을 보고


<육길원/ 주필>

한국 전쟁이 끝난 후, 페허 위의 가난 속에서도 미국에서 수입된 영화를 관람한다는 사치는 우리에게 큰 위안이며 행복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수많은 명화와 주인공들, 이제는 우리 세대가 좋아 하던 명배우들은 거의가 다 세상을 떠났지만이를테면 게리 쿠퍼, 존 웨인, 로버트 테일러, 버트랭 커스터, 어네스트 보그나인, 커크 더글러스, 존 포드, 프랭크 시나트라몽고메리 클리프트험프리 보가트, 율 브린너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앨런 래드찰튼 헤스턴오슨 웰스, 윌리엄 홀든, 진 해크먼, 록 허드슨리차드 위드마크, 코널드 와일드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레드포드.

여배우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먼, 데보라 카, 비비안 리, 나탈리 우드, 오드리 햅번. 에바 가드너, 케터린 헵번, 수잔 헤이워드 등등.

당시. 영화는 그 자체가 우리들의 꿈이었고, 주연 배우는 우상이며 구원의 애인이었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하던 매마르고 건조했던 시절, 그리고 골프나 여행 같은 것은 특수층의 사치였던 시절, 영화는 진정 우리들의 취미였고, 친구였다. 서울에서 일류 극장이었던 단성사나 중앙극장, 아니면 대한극장에서 외화를 한편 보고 나오면 큰 벼슬을 한 것 처럼 득의 만만하고 얼마 동안은 이야기 밑천이 풍성해 진다. 고등학교 때 극장에 갔다 들키면 불량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던 시절, 무사히 한 편 잘 보고 오면, 쉬는 시간에 칠판앞에 나가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던 용감한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미국을 동경하고 인생을 배우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 애인이 생기면 갈 곳이 만만치 않던 때, 극장은 아주 좋은 데이트 코스 였다.

그 때 본 명화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 중에는 카사브랑카, , 젊은이의 양지,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운드 어브 뮤직, 왕과 나, 콰이강의 다리, 여로, 이유 없는 반항, 시민 케인, 자이언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이눈셰인,  OK 목장의 결투애수워터 프론트, 역마차, 이런 것들이 나의 분신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과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인지 영화를 보는 것은 환상으로의 여정이라고도 하고, 데이비드 감독은 영화를 일컬어 다른 세상으로의 길 떠남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오락으로 영화를 당할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는 우리 인생에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반려자다. 어쩌면 한 편의 영화는 각자 우리들의 삶 자체인지도 모른다.

영화 예찬이 장황해 졌다.

실은 오늘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평생을 남이 만든 영화를 평가하는 글을 쓰다 생를 마감한 한 불세출의 영화 비평가의  죽음과 관 뚜껑을 덮은 후의 그에 대한 찬사에 관한 것이다.    

시카고가 배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비평가 로저 이버트(Roger Evert)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

그는 근 반세기 동안(1969년 부터) 시카고 선타임스에서 영화 담당 기자와 영화 칼럼니스트로 근무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갑상선과 침샘 암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병마에 시달렸다. 2006년 턱 제거 수술을 받아 말 하거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나,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작년 한 해만 해도 300여 편의 영화를 평론 할 정도로 강한 집념의 소유자 였다. 생전에 15권의 책을 저술했고, 트위터 팔러우어는 약 8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버트는 1975년 영화 비평 부문에서 사상 처음으로 퓰리처 상을 받았고, 또 배우가 아닌 평론가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공교럽게도 시카고가 낳은 또 한 명의 영화 비평가인 시카고 트리뷴 기자 진 시스켈( Gene Siskel-1999년 사망)과 함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좋은 영화에는 투 섬스 업Two thumbs up)’ 즉 엄지 손가락을 올려 영화의 질을 평가 했다.  ‘투 섬스 업은 영화  평가 용어로 그들의 전매 특허가 되었다.

이번 일요일 자 시카고 트리뷴지는 선 타임스와 경쟁지인데도 불구하고, 뉴스면 1면에 그의 인물 사진과 함께 3면에 장례식 안내, 그 밖에 연예 란비지니스 섹션 1페이지와6페이지에오피니언 란(Perspective), 24페이지 (Chance Of subjective), 사설란 오른쪽 27페이지 논평 란 (Commentary) 에는 트리뷴의 유명한 논설위원인 클라렌스 페이지(Clarence Page)의 조사 등 여러면을 할애해 특집처럼 온 통 이버트 사망 기사로 도배를 했다.

오늘은 시카고의 아이콘인 오프라 윈프리나 마이클 조단 보다도 더 영웅대접을 받고 시카고를 하직하는 이버트의 장례식이 오전 10시 다운타운 성당( Hole Name Cathedral) 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날 세계의 언론은 신뢰 받던 전설의 퇴장을 기리며 미국의 새 신화를 창조 했다.

뉴욕 타임스는 평소 나는 내 인생이라는 영화 안에서 태어났다라고 자주 말하던  이버트에게 대중을 위해 영화 평론을 미국 문화의 주류로 만든 것이 바로 이버트다라고 그를 칭송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대성은 바로 인물을 키우고 전설을 만들어 내는 힘를 가졌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래서 미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른다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나라들이 배워야 할 점 이라고 생각한다.

먼 길 떠나는 이버트의 이 세상 마지막 여행이 멋진  ‘환상으로의 여정이 되기를 기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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